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Jun 03. 2021

무지함의 자유

2019.03.07

몬터레이 바닷가, 17마일 드라이브에서 (2017.05.05)


많은 사람이 안다고 할 때, 혹은 아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앞다퉈서 목소리를 높일 때 “사실 아무도 잘 모릅니다”라고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가.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용기일지도,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담대함 일지도 모른다.


특히 자신을 향한 그 질문이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대답하지 않고 무지함을 고백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아니, 실은 정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이 직결된 문제라면 누구나 곡학아세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면 먼 훗날에 어떤 문제에 대해서 정말 다른 누구도 솔직한 답을 해줄 수 없는, 그런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아무에게도 지도가 없는 곳에 왔을 때, “저 길로 가면 낙원이 있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믿고 간 사람들이 모두 어두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이미 현기증이 날 정도로 미세하게 그려진 지도 위에서 자신이 서 있을 공간이 과연 있기는 한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결국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어느 능선의 조그만 부분을 약간 더 자세히 그리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 회의감 뒤에는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는 교만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가 이미 살아왔던 땅에 깃발을 내리꽂고 “여기는 내가 처음 개척한 미지의 세계입니다”라고 외치던 15세기의 어떤 탐험가가 낯설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더 분명히 알게 되면서 절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다.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자신이 함부로 나섰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수많은 경험과 숱한 고단한 나날을 겪으면서 굳어진 신중함과 두려움의 테두리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사실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건 아닐까.


하지만 다른 하나의 선택지가 있다. 자신의 한계를 온전히 인정할 때 따라오는 자유로움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너무 좁다고 생각했었던 그 울타리 안에는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풍성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 된다. 그 자유에 따라오는 책임도 있지만, 그 책임의 무게는 혼자서 져야 하는 짐이 아니다.


중력처럼 끌어내리는 익숙한 절망감에 주저앉지 않기를, 넘어질 때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문을 열면 들이닥치는 세상의 소란 앞에서 움츠리지 않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진 사람을 더 아낄 수 있기를, 자신에게 허락된 경험을 더 소중히 간직하기를,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더 깊게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두 모토를 떠올려본다. Veritas vos liberabit. Die Luft der Freiheit weht.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 자유의 바람이 오늘도 불어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오지랖의 흔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