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7
이번 학기 동안 정치학과의 학부 통계 입문 수업 조교를 맡게 되었다.
에세이가 아닌 R 코드를 채점하는 것인 만큼 조교 업무가 훨씬 수월하고 간단할 것이란 순진하고 약삭빠른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물론 시간이 예전만큼 소요되지는 않지만, 코드와 답을 살피며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점수를 주는지 확인을 거듭하는 작업은 여전히 간단하지 않다.
R 뿐만 아니라 인과관계, 선택 편향, 회귀 분석과 같은 기본적인 통계 개념을 가르치는 수업이어서 그런 걸까. 강의를 책임지는 교수가 아니라 작은 역할을 맡은 조교일 뿐이지만,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과제를 채점하면서 이 모든 행위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그렇다면 그 영향은 어떤 것인지 살펴보게 된다. (여러 명의 조교가 각자 같은 학생들을 학기 내내 맡는 게 아니라 조교마다 과제 하나를 맡아서 모든 학생의 숙제를 채점해야 '조교 고정 효과'가 사라진다는 누군가의 농담에 웃고 보니 중증인 것 같다.)
이미 다른 언어로 코딩을 해본 적이 있는 학생들이 꾸준히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수업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거나 코딩이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은 학기 내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도 있다. 처음에는 R을 사용해서 사회적인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생소했던 학생이 학기 말에는 양적 분석의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기능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강의 계획서에 명시된 수업의 목적이다. 그리고 수업에 임하는 교수와 모든 조교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헌신적인 교수가 강단에 서도 통제할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는 무수하다. 그리고 수업의 영향을 객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물론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측정 오류'를 완전히 없앨 방법은 없을뿐더러 과제나 시험 점수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독립 변수로 인해서 종속 변수가 변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대학원 1년차 때부터 누차 배웠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행위는 예외였으면 좋겠다는 착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양적 분석을 통해서 사회적인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 그 시도에 대한 흥미를 조금이라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지나친 욕심인 것 같다. 입문 수업인 만큼 기본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해야만 한다. 그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오히려 기본적인 내용일수록 간결하게 전달하기 어렵다는 벽에 부딪힌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질문에 답하고,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과제를 채점하다 보면 학생들을 친절한 관심으로 잠시라도 응원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긴 하루의 끝에는 그조차도 쉽지 않은 날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