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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11. 2021

언택트 교실에서

코로나 초기, 교육 현장의 모습 (2020.05.12)

2019.06.07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치학 방법론 수업 조교를 맡고 있다.


학부 전공 학생을 위주로 개설된 수업이지만,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통계 기법을 배우려 하는 타 분야의 대학원생도 일부 수강하고 있다. 주된 연구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박사과정 초기에 배운 내용을 더듬어 보면서 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에 자주 부딪히게 된다.


매주 금요일 아침에 50분씩 2번 진행하는 수업이 영상으로 고스란히 녹화된다는 사실은 학기가 절반이나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수업 중간에 질문이 많은 날에는 그 긴장감과 민망함이 몇 배로 증폭된다. 학생 모두가 마이크를 끄고 있고, 직접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수업 내용이 얼마나 잘 전달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조교를 해오면서 결국 수업은 담당 교수가 주도하는 것이고, 조교의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위로를 찾게 되던 순간이 있다. 이번 학기도 마찬가지다. 그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보조를 맡으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 뒤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바람이 사실은 안이한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본 강의에서는 교수가 다루지 않았지만, 금요일 아침마다 하는 수업에 잠깐 얘기했던 어떤 개념이나 예를 인용한 학생의 과제를 볼 때가 있다. 이럴 때 감사함보다는 두려움이 훨씬 무겁게 다가온다. 그 개념을 과제에서 잘못 적용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심화 과정의 초석을 세우는 수업이기에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의 질문에 "나도 잘 모르겠다"하고 뭉뚱그려 넘어가면 오히려 문제가 될 것이 없지만, 기본적인 내용을 어설프게 잘못 전달하면 그 오류를 인식하고 고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


학생 대부분이 사회과학 분야에 깊은 관심이 있고, 수업에서 배운 내용으로 어떤 사회적인 현상이나 정책에 대한 양적 연구를 하고 싶어 한다는 목적을 감안하면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학생이 마주치는 교수와 조교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그중  수업이 끼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과소평가하고 중요치 않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태도일까. 2, 4, 혹은  이상의 시간 동안 참석하는 모든 강의와 수업과 토론을 통해서 축적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기억에 남지 않은 모든 순간들도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통해서, 함께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매일 서로를 만들어가고 빚어간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Zoom 교실에서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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