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5
이미 거의 10년 전의 일이다. 중학교 때 2년 정도 다녔던 대치동 한 구석에 있는 수학 학원 선생님에게 오랜만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다. 모든 수업을 선생님 혼자서 직접 가르치시는 흔치 않은 학원이다. 지금도 여전히 혼자서 모든 수업을 담당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잠시 안부를 여쭌 다음에 표정이 어두워지시더니 말씀하셨다. 당시 대치동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생님에 대한 소문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고 하셨다. “선행학습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정신 나간 선생”이라는 험담이었다.
교과과정대로 기초 개념만 착실하게 쌓아도 선행학습을 하는 친구들보다 절대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나중에는 고등 수학의 개념들을 그 학생들보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회가 될 때마다 강조하셨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가 어느새 “정신 나간” 말이 되어 있었다.
지금 부족하게나마 할 수 있는 수학도 전부 그 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수업 중간중간에 해주시던 이야기에도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의 꿈이 사회에서 소외된 불우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셨고, 마지막으로 연락을 드렸을 때는 드디어 그 꿈을 조금씩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해주셨다.
몇 년 전에 블로그에 올리신 글을 다소 길게 인용한다.
아이들이 주변서를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학원에] 이런저런 책들을 비치해 두었다. 일견, 딱딱하고 지루하고 무미건조한 수학책을 또 비치해 두어서, 암묵적으로 또 다른 공부를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아이들이 책을 접하는 것이 이제 자연스럽고, 강요가 아닌, 지적 호기심과,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교과서보다 꿀맛 같은 재미가 있는 책이란 것을 깨달아 간다. [...]
탐구의 자세가 바르고, 지식 습득의 버릇이 예쁘고, 눈치 보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으며 빠져드는 아이들이 예쁘기만 하다. 언젠가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도 앞으로도 이 주장에 나는 이견이 없다. 결과가 종착점인 공부는 모든 입시가 끝나면 멈춰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과정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과정에서 얻은 지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깨닫는 성취감과 계획성, 지식 습득 체계에 대한 이해까지, 지식 자체보다 과정에서 깨닫는 숱한 경험들이 더 큰 지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교육 때문에 분주하다. 부모님도 분주하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분주하다. 너무 분주해서 그 분주함 속에 갇혀 있는 아이들은, 이런 재미를 느낄 기회가 없다. 그 분주함의 중심에는 항상 교과교육이 발목을 잡는다. 교과 교육에 발목 잡히는 것은, 과정보다 결과가 우선인 교육이기 때문이다.
바른 심성, 착한 마음, 사회를 바라보는 따사로운 시선, 지식의 올바른 쓰임에 대한 지향점, 그리고 그런 것들이 잘 조화된 위인들을 롤 모델로 생각하며 공부하는 아이들. 궁극에는 그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이다.
비교의 대상이 겨우 옆집 아이, 어느 반 누구였던가. 욕심의 정도가 겨우 몇 등 하는 것이던가. 부모가 돼서 겨우 그 정도의 욕심밖에 없던가.
‘지구본 있는 사람? 공부하기 전에 한 번씩 돌려 보거라. 우리나라 없다. 안 보인다. 그 안에 우리 학교, 우리 반, 그 안에 몇 등...꿈이 겨우 그런 거니?’
아이들 표정이 이렇다. ‘선생님, 저희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세요.’
나는 이 아이들이 지구본을 돌려보며 꿈을 꿀 것을 믿는다.
오늘 밤에도 수많은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대치동 학원가로 쏟아져 나오는 그 혼돈 속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이 무한경쟁의 광풍에 휩쓸려가는 어두움 속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계실 선생님을 기억해본다.
그리고 오늘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 선생님을 바라보며 열심히 노트를 끄적이고 있을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