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4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워싱턴의 한 북한인권단체에서 일을 하면서 맡았던 주된 업무 중에 하나는 보고서 발표회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선 행사 장소와 시간이 확정되고 나면 행사 당일에는 동료들과 함께 역할 분담, 배너 설치, 참석자 안내와 등록, 보고서 및 관련 자료 배포, 사진 촬영, 음향 설비 확인, 질의응답 시간 중 마이크 이동 동선 확인 등 여러 가지 세부적인 부분을 점검하는 일을 진행했다.
물론 매끄러운 행사 진행 그 자체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 실무적인 일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보고서에 담긴 조사 결과와 결론, 그리고 그 정책적 함의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실무적인 일들이 늘 그렇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뤄지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작은 부분이 하나라도 흐트러진다면 관중은 그 무대에 더 이상 집중할 수 없게 된다. 여러 행사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는 중용 23장의 가르침을 체득했던 것 같다.
저자와 발표자의 발언에 담긴 내용이 오롯이 전달되었다면, 기꺼이 귀한 시간을 내어 행사에 참석해주신 분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이끌었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다. 모종의 구체적인 경험으로 인해서 눈을 뜨게 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하나둘씩 이어지면서 관심사에 일정한 방향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발표회 행사를 거듭 준비하면서 서서히 깨달았던 것 같다. 이번 행사가 누군가에게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연히 전달된 사전 홍보 이메일을 보거나, 얼떨결에 친구를 따라온 어떤 학생이 이 자리에서 새로운 흥미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한다면 지루하고 자잘하게만 느껴지는 실무적인 일들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기에 매번 최선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무대를 어지럽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이 태도는 어떤 구체적인 관심사, 특정한 업무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 하루를 보내면서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나눈 대화와 시간들은 모두 누군가에게는 나름의 계기로 작용한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마음과 가치들이 상대방의 경로에 미약한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본다면, 무엇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는 없다.
누군가의 조언이 자신에게 계기가 되었듯, 자신이 남긴 말 한마디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계기로 남을 수 있다. 정작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의식하지 않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