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5 / 2021.07.15
"내가 지금 이러려고 너한테 전화한 게 아니잖아!"
대학교 1학년 때 기숙사 복도를 걸어가다가 문을 열어놓고 통화를 하는 한 남학생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들었다. 지나가던 중에 잠깐 들어서 자세한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맥락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했다.
힘든 하루의 끝에 위로를 받으려고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혀 그러지 못하고 되레 기분이 몹시 상한 모양이었다. 둘 다 위로가 필요했고 가장 의지하는 사람에게서 공감을 받기를 원했지만, 둘 다 그럴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57분 교통정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음이 퇴근시간 올림픽대로 마냥 "매우 혼잡"했던 것이다. 고대했던 오아시스와도 같은 안식처는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후였다.
우리에게는 다른 도피처도 있다. TV든, 컴퓨터든, 핸드폰이든 스크린 앞에서 멍을 때리며 하루 동안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드라마를 시청하거나 소설을 읽으면서 가상의 세계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공연장을 찾아서 음악을 감상하거나 요즘 인기 있다는 코미디언의 스탠드업을 보면서 숨이 넘어가도록 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이런 즐거움과 안락함도 실은 누군가의 수고 덕분이다. 퇴근하고 느긋하게 빨래를 개면서 보는 예능도 수많은 제작진이 계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1박 2일에서 나영석 PD가 제작진을 프로그램의 일부로 가감 없이 공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마감에 쫓기면서 매 컷에 심혈을 기울이는 웹툰 작가도, 대사 한 줄을 쓰기도 전에 현장을 수없이 찾아서 치밀하게 사전 조사를 하는 드라마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만화 <왓치맨>에 등장하는 우울한 광대 팔리아치의 일화가 보여주듯, 매일 누군가를 웃겨야만 하는 예능인이 느낄 심리적 중압감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마음이 유독 무거웠던 것은 중학교 때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인상 깊게 봤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하루를 밝혀주는 그들은 도대체 어디서 위로를 찾는 건지 궁금해질 때가 많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버텨내는 이유, 그 일이 끝난 후에 위로와 휴식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적인 이유를 무시할 수 없다. 김훈 작가가 강조하듯, 먹고사는 문제를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심리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눈에 뜨이기 위해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 혹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 당장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코미디언이 견뎌야 하는 숙명을 곰곰이 살펴보니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 것만 같다. 그들이 겪는 고초를 가벼이 여기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 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것은 아닐까.
두리뭉실한 이타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새벽부터 6411번 버스 첫 차를 가득 메우는 청소미화원이 없다면, 날마다 거리를 청소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환경미화원이 없다면 우리는 쾌적한 일상을 누릴 수 없다. 밤을 새우며 인터넷망을 살펴보는 관리자가 있기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고,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전력 수급을 예의 주시하는 기술자가 있기에 무더운 여름밤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의사, 판사, 검사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덜어주는 직업이다. 군인, 경찰, 구급대원과 소방대원은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노동의 현장이 얼마나 처절하고 냉혹할 수 있는지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너무 가볍게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가 누리는 편리함, 평온함과 안락함은 모두 다른 누군가의 수고가 지탱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퇴근 후의 휴식과 위로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일 그 자체가 누구에게는 조그마한 안식과 위로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