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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16. 2021

거울

2021.06.15

2020.01.23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날들이 종종 있었다. 전등의 빛 아래 드러나는 모습이 부끄럽고, 불편하고, 일그러지고, 불완전해서 세수와 양치를 하는 내내 눈을 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드러나는 모습이 자신의 가장 정직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순탄하지만은 않을지라도 충분히 예상과 통제가 가능한 범위에서 일어나는 일상, 그런 일상 속에서 비치는 모습은 일종의 가면일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쌓여가는 여러 가지 모순들, 여름 방학 동안 쓰지 않은 일기처럼 미루기만 했던 문제들이 일순간에 터지는 시기가 찾아온다. 피하고만 싶었던 모든 것, 인정하고 싶지 않고 차마 직시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이 마치 수술대 위의 환자처럼 지나치게 밝히 드러난다.


그런 갈림길 앞에 서게 될 때, 긴 고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어렵고 험난해 보이는 결정, 누군가는 용감하다고 부르는 결정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모든 고민은 그전에 이미 마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심을 했을 수도 있다.


이렇듯 혼란스럽고, 무력하고, 어수선할 수도 있는 시기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문자로, 전화로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바쁜 와중에도 소중한 추억을 하나라도 더 입혀주기 위해서 마음을 써주는 사람들, 그 자리에 항상 변함없이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자신을 향한 상대방의 마음도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법이다.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는 하루보다 큰 축복이 있을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도 떠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은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하나의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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