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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17. 2021

마음 넓히기

2019.01.24

스카이라인 (35번) 대로에서 바라본 일출 (2019.08.09)


좁은 마음에서 좁은 생각이 나고,
넓은 마음에서 넓은 생각이 납니다.
좁은 생각에서 다툼이 나고,
넓은 생각에서 화해가 납니다.
마음 넓히는 것보다 큰 일이 없습니다.

--- 조정민 목사




어쩌면 가장 큰 비극은 타인을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가 자기 자신 뿐이라는 사실이 아닐까.


누구나 아이일 때는 타인을 감각으로는 인식해도 머리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모든 관심이 자신의 요구에 집중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평생 이러한 본성을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지만, 전혀 벗어날  없는 것도 아니다.


타인도 나처럼 어떤 요구가 있는 사람이다 기본적인 인식은 “타인은 모두 나와 동일한 요구를 가진 사람이다 발전하고, 나아가서 “타인의 요구는 나랑 다를 수도 있다 확장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요구도 전혀 알지 못한다 다소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함께 가정을 꾸리며 살아온 두 사람도 몇십 년이 지난 후에야 “이제야 상대방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는 말을 하지 않는가. 일상을 공유한다고 해서 반드시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대사가 떠오른다.


“쉴 새 없이 말을 한다고 꼭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성격과 성향에 따라서 정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항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자신의 행동에 타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완전히 무감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에 관한 모든 추측과 분석은 결국 내면에 있는 상상의 폭을 벗어날  없다. “이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까지 생각의 흐름이 닿고, “내가 모르는 어떤 과거의 경험들 때문에 저렇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항상 염두에   있으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에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편협하다.


그러면  손을 들고 타인에게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으며 살아갈 것인가? 사실 가장 단순한 해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쌓이는 경험의 총량을 무시할  없다. 세월이 흐르며 거치는 희로애락을 겪어야만 얻을  있는 지혜가 분명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고뇌를 하다가도 부모님이나 스승에게 물으면 곧바로 명쾌한 해답을 얻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나이의 사람이 모두 같다고  수도 없다. 어떤 종류의 경험을 어떻게 되새겨보는지, 주변의 환경에 얼마나 예민하고 얼마나 집중하는지에 따라서 경험이 다르게 축적된다. 스쳐 지나가면서 육안으로 보는 세상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은 같지 않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널리 알려진 심리학 실험은 선택적으로만 집중하는 인간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노력을 통해 직접적인 경험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많은 나라에 여행을 가서 낯선 문화와 역사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처음 보는 아름다운 자연 광경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도 있다. 성장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하루를 보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에 뛰어들어야만 마음이 넓어진다고  수도 없다. 평생을  마을에서 지내며 살아온 농부가  세상을 구경한 방랑자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있을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잠잠하게 들여다보며 깨닫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또한 간접적인 경험을 늘릴 수도 있다. 책을 보며 의자를 떠나지 않고서도 지구 반대편에 있던 문명의 흥망성쇠를 살펴볼 수 있고, 온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론도 탐구할 수 있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며 상상 속의 인물의 감정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고, 시를 묵상하며 잠시나마 타인의 시선으로 삶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런 노력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다. 조정민 목사가 말하듯, “마음 넓히는 것보다 큰 일”은 없다.




그러나 경험을 아무리 축적해도 결국 주관(主觀) 높은  앞에서 주저앉게 된다. “성숙해진다 것은 자신의 마음이 좁고, 좁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는 과정의 연속이 아닐까.


세상과 사람이랑 부딪히면서 확고한 신념으로 간직하던 모든 것은 사실 어리석은 편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성찰이 부족해야만 확신으로 가득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은 사실 암흑을 찰나의 순간 동안 밝히는 번개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가끔 찾아오는 통찰은 사실 본질은커녕 표면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는 말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을 들여다보며 상대방의 입장을 최대한 상상해보고, 이 추측마저 완전히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다”는 표현은 절대로 과언이 아니다. 어느 한 사람의 마음이 온 세상만큼 넓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역설이 존재한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다양하지만, 동시에 사람은 생각만큼 다르지 않다. 자신과 타인의 교점이 전혀 없다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조차도 할 수 없다. 모두를 하나로 엮어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더라도 마음 깊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귀를 기울인다.


아무리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오게 되는, 그 무엇도 완전히 끊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오늘 아침에도 우리는 모두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오늘도 그 믿음 위에서 마음을 넓히며 서로에 대한 관심의 끈을 굳게 붙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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