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이 자란 사람의 마음

보호자 없이 자란 마음에 대하여

by 북극성
보호자 없이 자란 마음은, 늘 사람들 사이에 서서 혼자였다.


나는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했다.
세상을 다 안다고 말하기엔 이른 나이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안다.


내 인생에서
나의 보호자는 없었다.



가정폭력 속에서 자랐고,
이혼 가정이 되었으며,
부모는 있었지만
나를 지켜주는 어른은 없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 뒤를 따라오는 고독은
나를 다시 혼자로 만든다.


“언제는 내 옆에 누가 있었나.”

그 질문 앞에서
나는 늘 혼자였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내가 자랐던 환경은
내 안에 하나의 흉터를 남겼다.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유부터 찾았고,

칭찬을 들으면
진심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약속 앞에서도
기대보다 의심이 먼저 나왔다.

나는 사람들의 진심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존을 낮춘 채 살아가는 삶은
세상을 견디기 버겁게 만든다.


예전에 읽은 기사 하나가 떠오른다.
외로울 때 아스피린을 먹으면
통증이 줄어든다는 내용이었다.

외로움도 통증이라는 말.
임상 실험에서 실제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이 흉터를 안고 살다 보면
가끔은 정말
아스피린을 먹어볼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내 선택은 늘 같았다.
이 아니라, 버티기였다.




버틴다.
가슴이 조여 온다.

다시 버틴다.
숨이 가늘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동안 눌러두었던 반항심이
뒤늦게 고개를 들지만,
그마저도
눈물로 접어버린다.




나는 언제나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버티다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나 자신을
끝내 버리지 못해
더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다 결국
완전히 무너진 나를 마주했다.




뜨겁게 흘러내린 눈물이
내게 알려준 건 이것이었다.

버텨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내려놓아야 할 건 책임감이라는 사실.


사실 나도
울어도 되는 사람이었다.

내 책임이 아닌 것까지
왜 나마저 내 몫으로 살아왔는지
그제야 보였다.




정리가 끝난 뒤의 세상은
시릴 만큼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말은 지나갔다.

체면이 상하기 시작했다.
그게 보호막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내 내면을 볼 마음이 없던 사람들이다.




전쟁이 끝난 자리에는
허전함이 남았다.


그런데 그 허전함 속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오래 써온 가면을 벗고 바라본 세상은
허무했지만,
그제야
진짜 나로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의 흉터를 안고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삶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이전보다 훨씬 평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