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촌 별에서 처음 받은 자동차

큰 자동차 대신 손에 남은 것

by 북극성

친오빠 집에 놀러 간 날이다.



거실 한가운데 세 살 사촌 언니와 네 살 사촌 오빠가 자리 잡고 있고,
채아는 낯선 집과 장난감,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훑는다.



큰 자동차를 모는 언니와 작은 자동차를 줄 세우는 오빠를 사이에 두고, 채아는 가만히 바라본다.



먼저 눈으로만 논다.
언니가 자동차를 굴리는 손, 오빠가 장난감을 줄 세우는 모양,
웃음이 터지는 타이밍까지 한참 지켜본다.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는지
거실 바닥을 손으로 짚어가며 조금씩 다가온다.
그러다 언니와 오빠 옆에 조용히 자리를 튼다.
말로 묻지 않지만, 몸이 먼저 말하는 느낌이다.

나도 여기, 같이 있어 볼게.


잠시 뒤, 손이 움직인다.
언니가 들고 있던 반짝이는 자동차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손이 닿기도 전에 소리가 튀어나온다.

“안돼애~~”

길게 늘어지는 세 살 아이 목소리.
귀엽게 들리지만, 뜻은 분명하다.
지금 이 장난감의 주인은 자기라는 선언.


언니는 자동차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툭툭 걸음을 옮겨 놀이방 안으로 사라진다.


채아는 그 자리에 앉은 채
문쪽을 잠깐 바라본다.
울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다.
방금 생긴 규칙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얼굴이다.

짧은 빈틈이 흐른다.



큰 노란 자동차를 끼고 선 사촌언니가 빨간 작은 차를 내밀자, 채아가 언니 얼굴을 올려다보며 웃는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다시 나온다.
이번에는 다른 자동차를 손에 들고 있다.

채아 손에 쏙 들어갈 만한,
작고 가벼운 자동차 한 대.

언니가 그 자동차를 앞으로 쑥 내밀며 말한다.


“애기는 이거 가지고 노는 거야.”


그 한마디를 남기고
언니는 다시 자기 놀이터로 돌아간다.
설명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 나이의 자연스러운 속도로.


채아는 다시 놀이방 쪽으로 시선을 한 번 더 보낸다.
다시 그 안으로 사라지는 언니 등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시선을 내려 자기 손으로 가져온다.


손에 쥐어진 작은 자동차를 한 번 꼭 쥔다.
바닥에 내려놓고 바퀴를 굴려 보고,
다시 집어 들고 뒤집어 보고,
손가락 사이에서 이리저리 돌려 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언니가 들고 있던 큰 자동차에 마음이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손 안의 작은 자동차에 집중한다.


겉으로 보면 거절당한 아이 쪽에 더 가깝지만,
내 눈에는 언니와 오빠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고
손에 들어온 새 장난감을 시험해 보는 작은 연구원 같다.


현관 옆에 서서 그 장면을 보는데
마음 한쪽이 살짝 저릿하다.
채아는 언니와 같이 놀고 싶어 손을 뻗었고,
조카는 아직 어린 자기 마음을 지키느라 “안돼애~~”를 선택한 것뿐이라는 걸 안다.
둘 다 이해되는데, 그 사이에 서 있는 내가 잠깐 조용해진다.


그래도 오늘 이 자리에서는
조카의 감정도 같이 두기로 한다.
그 아이에게도 아직은 나누기 싫은 것이 있고,
자기 것이라고 붙들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언니 오빠 사이에 앉아
보고, 듣고, 따라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서
더 자주 데려오면 좋겠다는 마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조금 미안한 마음.
두 감정이 나란히 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뒤를 돌아보면 채아는 이미 꾸벅꾸벅 졸고 있다.
사촌 옆으로 기어가던 몸짓이랑
작은 자동차를 손가락으로 굴리던 손이 같이 떠오른다.



오늘만 보면
큰 자동차는 한 번도 못 만져 보고,
작은 자동차 한 대만 손에 쥐고 집에 돌아가는 날이다.
엄마로서는 그 장면이 조금 쓰리다.


그런데 머릿속에 오래 남는 건
언니의 “안돼애~~”가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진 채아의 얼굴이다.


울지 않고, 드러눕지도 않고,

손에 들어온 작은 자동차를

이리저리 굴려 보던 조용한 몰입.



언젠가 더 큰 무리 속에서
더 직접적인 “너 말고 얘”를 경험하게 될 거라는 걸 안다.
그 생각이 스치면
미리부터 마음이 꽉 조여 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오늘의 채아는
결핍에서 출발한 아이 같지는 않다.
“나도 저기 가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언니 옆으로 기어가 손을 뻗은 아이에 가깝다.

나는 그게 좋다.




거절이 전혀 안 아프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 아이 안에서 시작점만큼은
가능한 오래 호기심 쪽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채아가
정말 서럽게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 오면,
그날 나는 그 울음을 끝까지 다 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손에 뭐가 남아 있는지
그때 가서 같이 천천히 볼 생각이다.



오늘은 작은 자동차 한 대.
그리고, 그걸 끝까지 굴려 보던
아기 우주인의 조용한 집중력.

이 정도면, 이 아이 인생의 첫 “안돼” 하루를

나는 꽤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빨간 자동차를 꼭 쥔 채, 세상을 다 가진 듯 웃는 아기 우주인 채아.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