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가 데려온 반복되는 축복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가
하룻밤 우리 집에 묵으러 오시는 날이었다.
치매가 예전보다 많이 심해졌다고,
이제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며칠 전부터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문을 열어 할머니를 마주 보던 순간,
반가움보다 먼저 들어온 건
걱정이랑, 설명하기 애매한 감정들이었다.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이제 눈으로 확인해야 하는 날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예전부터
좋은 게 생기면 할머니 집부터 챙기는 사람이었다.
젊을 때부터 고생만 하고 사셨던 분이라,
뭐 하나라도 보내드리면
내 마음이 먼저 편했다.
그래서 할머니를 집에 모시는 일도
나에게는 낯선 부담이 아니라,
원래 내가 하던 역할의 연장이었다.
예전에는 외손녀로,
지금은 채아 엄마로.
나는 항상 누군가를 챙기는 쪽에 서 있었다.
거실에 들어온 할머니는
먼저 아기를 찾으셨다.
“애는 어디 있노.”
내가 채아 이름을 불러 이름을 알려드리자,
할머니는 그 작은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곧장 채아 이름을 불러 본다.
“채아야.”
평소처럼, 채아는
이름을 듣자마자 활짝 웃는다.
순식간에 할머니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간다.
“아이고, 애가 어떻게 이리 순한고.”
“이쁜 것이 이쁜 아기 낳았네.”
“이게 다 니 복이다.”
그날 할머니 입에서 나온 말은
거의 이 세 문장이었다.
채아가 장난감을 만져도,
소리를 질러도,
엉뚱한 데를 바라보다가 웃기만 해도,
“순한 고야.”
“예쁜 고야.”
“다 니 복이다.”
조금씩 단어만 바꿔 가며,
칭찬이 하루 종일 반복됐다
처음에는 그 말들이
그냥 감사했다.
그런데 한두 번을 넘어서
열 번, 스무 번이 되고 나니
가슴 한쪽이 서서히 저려왔다.
가족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조여오는데,
기억까지 빠져나가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사실 꽤 무력한 경험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약 챙겨 드리고,
병원에 같이 가고,
오늘 들었던 말을 내일 또 들어도
같이 웃어 드리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그날 할머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매가 이분에게는
그래도 곱게 왔구나.
세상이 좁아지는 만큼,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예쁘다”와 “복이다”뿐이라니.
오늘의 할머니는
그래서 더 예뻤다.
다음 날은 큰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정밀검사 결과가 두렵다기보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이후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할머니가 병원 가자는 말에
크게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약 먹는 법을 설명해 드려도
중간중간 잊어버리시긴 하지만
“그래, 그래” 하며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시는 분이라
그게 고마웠다.
그날 저녁,
할머니는 놀이방 울타리 안에 들어가
채아를 안고 바닥에 앉았다.
채아가 장난감을 집어 들면
“아이고 예쁘다.”
바닥을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소리를 내도
“아이고 순하다.”
별것 아닌 움직임 하나에도
칭찬과 웃음이 붙었다.
아마 할머니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이렇게 한 사람을 향해
많은 칭찬을 보낸 날도
드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칭찬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채아였다.
나는 옆에서
그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할머니 옆에 앉아
“얘기 좀 들어 봐라” 하며
사소한 일들을 털어놓던 시간들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나는
누군가의 보호자 역할을
슬쩍 대신 맡고 있던 것 같았다.
지금 나는
딸의 엄마이자,
여전히 이 집에서 제일 먼저
어른들을 챙기는 사람이다.
외손녀에서 엄마가 되었지만
내 자리의 방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날 채아는
아마 자기 인생에서
가장 많은 “예쁘다”와 “순하다”를
한 번에 받아 본 날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채아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
살짝 보이는 날이기도 했다.
먼 훗날,
채아가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왕할머니 인생에서
제일 많은 칭찬을 받은 사람이 너였어.”
오늘의 채아는
누가 앞에 서 있든
먼저 웃음을 건네는 아이에 가깝다.
늙어 가는 사람의 마음에도,
처음 만난 사람의 마음에도
작은 불을 켜 주는 아이.
언제나 사람들을
웃게 해 주는 채아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