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결혼기념일에 처음으로 놀이공원을 간 날

회전목마만 탈 것 같아서 미뤄둔 시간들

by 북극성

일주일 전 밤, 채아는 좀처럼 잠을 자려하지 않았다.
품을 파고들었다가 울타리를 잡고 일어났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나도 그제야 겨우 눈을 감으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채아가 조금 더 크면, 바이킹 타고 싶다 그러면 탈 수 있겠어?”

놀이기구를 무서워하는 남편은
잠결에도 체면을 놓지 않으려고 했는지
조금 과하게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당연히 타야지. 아빠가 같이 타야지.”

겁이 많은 걸 아는 나는 그 말이
괜히 더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약속을 대충 웃어넘기고 잠이 들었다.



결혼기념일 전날, 오빠 부부가 평택 근처에
작은 놀이동산이 있다고 알려줬다.

크게 볼거리 많은 곳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타기 좋은 기구들이 몇 개 있고,
근처에는 평택항이 있어 물구경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채아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그 작은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전날 밤늦게까지 울던 채아는
차가 출발하자마자 금세 잠들었고,
나도 옆에서 고개를 기울인 채
같이 꿈나라 여행을 했다.


운전석 혼자만 깨어 있는 남편의 옆에서
뒷좌석은 조용한 우주선 같았다.



놀이공원 앞에서 삐친 엄마와, 그 이유를 아직 모르는 아빠.



사실 우리 부부는
연애할 때도, 결혼하고 나서도
놀이공원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나는 놀이기구 타는 걸 좋아하지만
남편은 회전목마만 겨우 탈 수 있는 사람이라


‘굳이 가서 뭐 하겠나’ 싶어
서른을 넘긴 시간 대부분을
그냥 지나쳐 보냈다.


그래서인지,
입구에서 보이는 작은 관람차와 회전목마,
알록달록한 회전컵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설렜다.



“우리, 진짜 놀이공원에 왔네.”

내 말에 남편이 씩 웃었다.



아직 돌도 안 된 채아가 탈 수 있는 기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회전컵 위, 아빠 품에 안겨 첫 놀이기구를 타는 아기 우주인.



우리는 가장 무난해 보이는
어린이 기차회전컵을 골랐다.



회전컵에 탔을 때,
나는 일부러 손잡이를 돌리지 않았다.

위아래로만 살짝 움직이는 것도
이 작은 몸에겐 꽤 큰 모험 같아서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채아는
‘여긴 어디지?’ 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반대로 남편은,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 회전컵 위에서
입이 찢어지게 웃고 있었다.


마치 대단한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사람처럼.



그 표정을 보는데
괜스레 마음이 조금 찔렸다.



나는 그동안
‘신나는 놀이기구’라는 내 기준으로만
즐거움을 계산해 왔다.

회전목마만 타는 건 재미없을 거라 단정하고
아예 놀이공원이라는 선택지를
우리 가족에게서 지워 놓았던 것 같다.

싱거운 회전목마만 타더라도,
남편과 채아와 함께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었는데.



남편이 채아를 품에 안고
회전컵 안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가 처음 연애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우리는
돈도 시간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서로만 바라봐도 웃음이 터졌다.

큰 근심 없이
마냥 행복하다고 믿던 때였다.


지금은 아이를 안고
기구가 도는 방향 대신
아이의 표정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 되어 있지만,

남편의 웃는 얼굴만큼은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게 이상하게 든든했다.


채아는 처음 타보는 놀이기구에
아빠 품에 더 깊게 파고들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보다가,
다시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계속 말을 건넸다.
채아가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상관없이.



놀이동산 한쪽에는
평택항이 내려다보이는 길이 있었다.

우리는 잠깐 산책을 하며 물결을 구경했다.
언제나처럼 채아는 유모차에 앉아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저녁이 가까워질 무렵,
근처 조개구이 집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던 조개를
실컷 구워 먹으면서,
남편과 나는 둘이었을 때로
이야기를 잠깐 돌렸다가
금세 다시 지금의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 또 오자.”
“응, 채아 좀 더 크면 진짜 열차도 태워 보자.”



추운 겨울바람이 본격적으로 불어오기 직전,
아직 코끝이 얼지는 않던 11월의 어느 날.



결혼기념일, 삽교호 놀이동산에서 남편과 우주인 채아, 그리고 나까지 한 장에 담았다.



마침 그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연애 6년, 결혼 몇 해를 지나 처음으로 온 놀이공원.

우리는 처음이면서도 늦게 온 만큼 더 소중한 이 시간을
채아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그날 하늘은 맑았고,
우리 가족은 어김없이 웃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