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적요히

by Lunar G

가슴에 불이 난 것 같다.

손부채질이라도 하면 이 화기가 가실까, 팔을 움직여 본다.

손이 헛도는 만큼 속은 끌어 오른다. 부글거리는 열을 덜어내려 얼음을 깨문다.

덥다. 바람은 이렇게 찬데 나는 어째 땀이 나도록 덥다.


구토하듯 숨을 내뱉는다. 눈앞에서 허연 김이 유령처럼 하늘거린다.

볼을, 귀를, 코를 치고 간 바람이 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예리한 칼바람이 마음을 벤 듯 가슴이 얼얼하다.

쓰린 겨울바람이다.


심장을 식혔다 싶었더니 눈밑이 뜨끈해져 온다.

볼도, 귀도, 손도 얼음처럼 찬데 눈은 견딜 수 없이 뜨겁다.

눈은 타고 가슴이 얼어버릴 것 같아서

눈물을 내놓는다.


등 돌리고 나면 화마 같은 이 열기도 가실지 모른다.

삶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처랍시고 끌어안고 있던 그걸 외면하기로 한다.

열정이랍시고 손에 쥐고 있던 그걸 내놓기로 한다.


성난 바람이 심장을 후벼 판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고통이 인다.

하얀 눈 앞에 서서 자문한다,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시간에게 묻는다, 왜 날 여기로 데려다 놓느냐고.


심장만 터질 듯 두근거릴 뿐, 답은 들리지 않는다.

아프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극심한 이 고통은 겨울의 여운일 뿐이겠지.

볼을 적신 눈물은 못다 핀 열정의 꽃이겠지.

흩날리는 꽃잎이 매질 같이 쓰리고 매운 건 상실의 두려움 때문이겠지, 하고 위안한다.



김정희_세한도.jpg 세한도_김정희

마른 내 눈은 울지도 못하는데

가슴은 촉촉이 젖어오고

눈은 적요히

조각난 가슴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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