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나요

by Lunar G

참고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줄 알았다.

무던히 실패에 맞서 싸우면 원하는 곳에 이를 줄 알았다.

기다림은 답을 주지 않았다.

침묵의 낙선, 이젠 나마저 내게서 등을 돌리려 한다.


이백 번의 응모와 낙선. 기다리던 소식을 알리는 벨 소리가 울렸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거듭된 낙선과 시련을 대면할 맷집을 길렀다. 내쳐지는 데 단련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바닥이었다. 강해져야 했다. 더 단단해져야 했다. 눈물은 흘려도 무릎은 꿇을 수는 없었다. 출발선에 당도하기 위해 나는 어느샌가 낙선을 이력 삼아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십 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지금은 보이는 것도 잡히는 것도 없다. 어디까지 왔는지 출구가 있기는 한지도 확신할 수 없다. 방향을 틀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그만 두라는 차가운 눈도 보인다. 눈물이 핑 돌더니 심장을 매질하는 뜨거운 피가 느껴진다. 그래, 그대로 가는 게 최선이다. 그것 외에 다른 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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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뒤로 밀려나고 있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했다. 취업, 결혼, 진학. 모두들 차근차근 인생을 쌓아가고 있는데 내 땅엔 쌓인 게 보이지 않았다. 절박해진 성취에 대한 마음만큼 분노와 원망도 짙어졌다. 멘토들 말대로 꿈만 보고 달렸는데 삶은 갈수록 더 남루해졌다. 꿈은 나를 아사 직전까지 끌고 간 후에야 그 허기 위에서 뿌리내리려는 모양이었다.

청춘의 열정을 어떻게 남겨야 할지 몰랐던 때, 종이와 펜에서 그 답을 찾았다. 이십 대 초반에 전업 작가가 될 거라고 선언했었다. 모두들 만류했다. 누가 봐도 험난한 길이었다. 우려의 목소리는 귓전으로 들어 넘기고 호기롭게 그 길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두 번 오지 않을 젊은 날이라면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싶었다. 간절했고 또 무모했다. 내겐 그 꿈이 정말 절박했다.

실패는 두렵지 않았다. 백 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자신도 있었다. 백 번 까지는 정말 괜찮았다. 계속 견딜 수 있을 것았는데 이백 번이 되니 일어서기가 쉽지가 않다. 왜 한 길만 고집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도 든다. 당장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던 다급함을 열정이라 해야 할지 치기라 해야 할지, 이젠 쓴웃음 속에 고개만 저을 뿐이다.

펜 쓰는 일을 마음에 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당도했을지 모를 미래. 결혼을 했거나 직장에서 자리를 잡았거나, 박사를 받았거나. 빈손에 쥐어진 펜 한 자루를 보고 있자니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다. 실패에 맞서느라 애썼다며 한 번쯤은 내 등을 토닥여줘도 되는데 나는 오늘도 채찍을 든다. 무너지면 다시 일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태해지면 뒤쳐진다는 불안 때문이다.


이 정도면 성패를 떠나 부끄럽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펜을 든 지 근 십 년 만이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았다. 내 눈에만 보이는 이력이 두서없이 놓여 있었다. 쓴 건 많은데 인정받은 건 적었다. 그동안 뭘 했던 걸까. 꿈이 뭐라고 세월 가는 것도 잊고 있었을까. 인생을 잘못 설계한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낭패감이 지나갔다.

자그마치 십 년, 이젠 거절당하는 데 몸서리가 쳐진다. 우는 것도 지친다. 남들과는 다른 일상과 불안한 현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막막함을 대면해왔는데도 결과는 ‘아직’이다. 성취가 보이지 않으니 과정도 없는 게 됐다. 이력서에는 실패를 적을 칸이 없음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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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백 개의 입사 지원서, 수백만 원의 입사 준비 비용, 입사 후 삼 년 이내의 이직. 치열하게 사는 이 시대 청년들의 좌표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 있는데도 그것도 모자라다며 모두들 스스로를 채근한다. 사력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남은 건 없다는 허탈함, 한창일 시기에 퇴사의 불안을 마주해야 하는 현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온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사정도 잘 모르면서 청년들이 몸을 사린다며 고개를 젓는다.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너무 고리타분하고 저쪽에서 보면 이쪽이 너무 무르다.

시린 걸 넘어 쓰린 현실이다. 입사하면서 이직을 생각하고 자격증에 열을 올리고 취업 과외를 받는 젊은이들의 근성을 나약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사방에 기회가 널렸는데 왜 도전하지 않느냐고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다. 기본 백 개의 지원서면 심장이 반은 녹아내렸을 것이고 바닥을 친 자괴감을 굴을 파고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허기진 짐승처럼 끊임없이 청춘의 열정을 빼가는 회사.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을 찾아 허덕이는 불안한 청춘. 전장만큼 살벌한 생존의 터전 속에서 청년들은 기성과는 다른 형태로 고군분투 중이다. 철 밥통이라 불리는 직장의 경쟁률이 해마다 높아지는 건 열의가 없어서가 아니다. 개인의 노력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하늘을 앗아갔기 때문이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변화가 나침반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 패기 하나만 믿고 꿈에 인생을 걸어보라는 건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조언이다. 소망하던 일의 끝이 진정 천국이었던가. 꿈의 끝은 또 다른 인고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칼바람에 맞서 버티는 건 살벌하리 마치 잔인하고 아팠다. 때론 꿈 그 자체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도 했다. 꿈을 구실로 이런 현실을 누구에게 권할 수는 있단 말인가.


틀.jpg 틀, 세계을 보는 눈. 그 밖에도 세상은 있다.

그럼에도 꿈의 길을 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자신이 중심이 된, 후회 없을 선택을 했으면 한다. 가지 않아 후회가 남을 것 같다면 타협보다 도전을 택했으면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용기를 내보는 것,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는 것, 그게 청춘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실패 후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것만큼 청춘의 큰 아군은 없지 않을까.

한 해가 더 지나면 할 수 없는 일도 그만큼 많아진다. 시도하지 않아 후회할 것 같다면 오늘이 첫 단추를 채우는 날이 되어야 한다. 남들과는 다른 도전을 하고 어려운 길을 가려하는 누군가가 느끼는 막막함. 세상의 끝에 선 것처럼 떨리고 두려울지도 모른다.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답은 이미 나왔다. 뜨거운 피가 도는 동안 그 도전은 치기가 아닌 열정인 것이다.


꿈의 길에 있건 꿈을 잠시 미뤄뒀건 아니면 그게 뭔 지조차 모르건, 시린 시간을 관통하고 있는 그대들이 오늘을 잘 디뎠으면 한다. 낙방에 눈물은 흘릴지라도 스스로의 가능성에서 등은 돌리지 않았으면 한다. 선택받지 못했다 해서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 폄하하는 일도 없었으면 한다. 실패는 단단해지는 법을 깨우쳐주는 일회용 참고서일 뿐, 내 삶의 척도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가치를 정하는 건 나이다.


실패에 지지 말고 시행착오로 스스로를 깎아내리지도 말고, 기다림의 끝에서 모두가 함께 따뜻한 봄볕을 맞기를 소망한다.



- 브런치와 인연을 맺게 해 준 첫 글. 2016년 2월 늦은 밤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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