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저스, 전략적 입소문
판매나 실적을 전제로 일을 해본적은 없다. 내가 어떠한 물건을 팔아야 먹고 살수 있었던 적도 없다. 그래서 마케팅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도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가끔 업무를 하다가 홍보가 필요한 것들은 대행업체에 위탁하면 그만이었다. 언론에 기사가 필요한 것들은 '보도자료'라는 이름으로 전에 썼던 것에서 몇글자 고쳐서 뿌렸다. 이렇게 하면 최소 인터넷 언론에서는 실어줬다. 가끔씩 마케팅 성공사례로 나오는 것들도 그것은 그냥 남의 이야기였다.
책을 한권 썼다. 시간관리에 대한 고민을 책에 쏟아 냈다. 책이 나오고 출판사에서는 꽤 많은 돈과 노력을 홍보에 쏟아부었다. 교보문고에 광고를 걸고, 지방 서점들과도 여러 협력을 하였다. 하지만 생각만큼 책이 팔리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 체면치레만 할 뿐이었다.
책을 출간 한 이후 홍보와 마케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어떠한 홍보 방식들이 있는지? 그 중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는지? 다음 번에 책을 또 쓰게 된다면 어떻게 책을 홍보해야하는지? 고민으로만 끝날 수 있었던 주제를 다시 끄집어 냈다. #씽큐베이션 #체인지그라운드 #잘팔리는글쓰기 모임을 통해 #컨테이저스전략적입소문 을 읽으며 해답을 찾았다. 내 책과 컨텐츠가 왜 읽히지 않고, 팔리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1. 소셜화폐의 법칙 : 사람들은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이야기를 공유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신기한 것들을 남들에게 전달하고 소문내고 싶어한다. 나 또한 어디에선가 좋은 정보를 얻으면 주변에 알려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다만, 아무 이야기나 막하지는 않는다.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내 위상이 높아질만한 정보, 상대방이 궁금해할만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 조나버거는 이러한 점을 소셜화폐의 법칙이라 명명하며, 소셜화폐에는 내적비범성, 게임메커닉스, 소속감 등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간관리는 과연 이렇게 사람들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정보인가를 점검해봤다. 답은 'NO'이다. 시간관리는 이미 고리타분한 주제가 되어버렸다. 요즘 사람들은 시간관리에 대해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기술에 더 큰 관심이 있다. 또한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과의 관계를 잘 구축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만일 책을 또 쓸 기회가 있다면 사람과의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주제로 글을 쓸 것이다.
내 책의 제목은 #나는오늘숨은시간을찾기로했다 이다. 시간관리에 대해 글을 쓰며서 '숨은시간'이라는 개념을 스스로 정의했다. '주변에 분명히 있지만 보이지 않아 내가 활용할 수 없는 시간', 아주 뿌듯했다. 기가막힌 개념을 하나 만들어 낸것 같았다. 하지만 나 혼자만의 판타지였다. 책이 출간된 이후에 숨은시간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숨은 시간이 뭔가요?", "개념이 딱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요" 직관적이지 않은 개념으로 사실상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세살된 딸은 내 핸드폰을 호시탐탐 노린다. 보통은 아이 키가 닿지 않는 곳에 핸드폰을 두는데, 가끔씩 탁자나 식탁위에 두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들고 간다. 핸드폰을 손에 쥐고 아무 고민없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민다. 어플을 손가락으로 터치한다. 직관적인 개념을 사용했기 때문에 세살짜리 아이도 쉽게 핸드폰을 사용한다.
글도 이와 마찬가지다. 독자가 고민없이 글을 읽어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독자가 내 글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일이다. 이런 와중에 머리를 갸웃하게 만드는 개념이 중간에 끼어 있으면 그 글은 읽히지 않는다. 나만의 '숨은시간'개념을 만들어낸 내 책은 소셜화폐의 법칙을 철저히 무시했고, 잘 팔리지 않는 글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2. 계기의 법칙 : 사람들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것을 공유한다.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뜬금포로 아무런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직장인의 핫이슈는 누가 뭐래도 '점심메뉴'이다. 점심시간에 회사 주변 맛집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한다. 동료들과의 대화가운데서도 주로 점심에 뭐먹는지, 어디가 맛있었는지, 어떤집이 새로 생겼는지를 이야기한다. 점심식사시간은 매일 찾아온다.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해도 당일 점심은 먹거나, 먹어야하기 때문에 공유하는데 크게 어색함이 없다.
연초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한해를 계획하고 다짐을 한다. 그 때 시간계획에 대한 것도 생각을 한다. 내 책의 주제는 1년에 겨우 한번, 사람들이 떠올릴 수 있는 주제였다. 1월이 지나가면 그마저도 흐지부지 된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주제이며, 1년에 한번정도 떠올리는 빈도수가 낮은 주제다. 입소문을 타기가 어렵다.
책을 쓴 이후에 시간관리 주제를 가지고 동료들과 대화를 시도해봤다. 하지만 마땅한 계기가 없었다. 다행히 책에 대해서 물어봐주는 동료들이 있을 때는 시간관리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그 뿐이었다. 저자인 나도 계기를 찾기가 어려웠다. 일반 사람들은 더 심했을 것이다.
만약 내 책이 직장인 점심메뉴에 대한 고찰이었다면, 그리고 회사가 위치한 지역의 맛집을 분석했다면 조금 더 이슈가 되어 입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3. 감성의 법칙 : 사람들은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주제를 공유한다.
대중은 사람냄새를 원한다. 비록 그 이면에 마케팅이라는 진짜 의도가 있다 해도 눈앞에는 사람냄새가 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러한 감성적인 부분을 잘 터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박카스' 광고라고 생각한다. 박카스 광고의 핵심은 '박카스를 마시면 피로가 풀린다' 이다. 하지만 한번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노출하지 않는다. 또한 유명 연애인이 아닌 일반인을 광고 모델로 내세운다. 이를 통해 일반인의 일상생활을 통해 시청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낀다. 특히 그 경험이 극적일 때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예를들어 시간관리를 하나도 못해서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시간관리로 큰 성공을 이룬 경험담이 있다면 조금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지 모른다.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적인 시간관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4. 대중성의 법칙 : 사람들은 눈에 잘 띄는 것을 모방하고 공유한다.
휴가를 갔을 때 근처 공원에서 바베큐 립페스티벌이 열렸다. 똑같은 립 메뉴지만 가게 고유의 독특한 소스와 조리법을 내세워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처음 가보는 페스티벌이기에 어떤 가게가 맛있는지 알 수없었다. 더군다나 모든 메뉴와 설명은 '영어'로 쓰여있었다. 어느 가게의 립을 살지 잠깐 고민했지만, 답은 쉽게 내렸다. 가장 줄이 긴 가게에 가서 립을 샀다.
사람들은 불확실성에 직면할 때면 타인을 관찰해 모방한다.(212p)
책을 읽기로 결심한다. 교보문고에 가서 가장먼저 들르는 곳은 단연 베스트셀러 코너이다. 국내 베스트셀러 코너를 장식하고 있는 책의 면면을 보면, 여행, 역사, 관계, 위로로 정리할 수 있다. 시간관리는 끼어들 틈이 없다.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없을 때 다른 사람들의 결정을 참고한다. 그리고 그 참고는 본인의 결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내 글을 더 잘팔고 싶었으면 지금 대중이 관심이 있는 주제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었다. #잘팔리는글쓰기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독자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5. 실용적 가치의 법칙 : 사람들은 타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를 공유한다.
가족여행을 가기로 했다. 장소는 마카오. 비행기야 시간과 가격을 따져서 예매를 하면 되지만, 마카오 공항에 내린 순간 부터는 모든 움직임을 계획해야한다. 가장 첫번째로 할 일은 역시 검색이다. "마카오 가족여행", "마카오 아이랑", "마카오 3박4일", "마카오 숙소추천" 다양한 검색어로 검색을 한다. 가장 먼저 뜨는 것은, 역시 여행사 광고다. 믿고 거른다. 스크롤을 내려 블로그로 향한다. 직접 마카오를 다녀온 "일반인"들의 생생한 후기를 검색한다.
이와같이 실용적인 정보는 입소문을 탄다. 뭔가 도움이 될만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현지에서 자기가 겪었던 일들, 맛있었던 식당, 좋았던 경험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야기한다. 가치있는 정보는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서 인지 요즘 SNS에는 정보성을 갖춘 광고(Informative advertisement)가 많다. '목표를 이루는 방법', '대화에 성공하는 방법' 등 궁금증을 느끼게 하는 제목으로 게시물이 올라오고, 관련된 핵심 정보를 공유한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 책, 강연 등 관련된 것들을 소개한다.
#숨은시간찾기는 과연 이러한 실용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반문해 봤다. 나 스스로는 아주 좋은 정보들이라고 생각했다. 실천했을 때 누릴 수 있는 이득도 꽤 크다고 생각했다. 6가지의 법칙 중 그래도 유일하게 해당된다고 생각한 법칙이다. 다만, 숨은시간찾기에 대한 정보를 접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만큼의 실용성을 가진 정보인가에는 의문점이 생긴다.
6. 이야기성의 법칙 : 사람들은 흡입력 강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위의 다섯가지 법칙은 전반적으로 컨텐츠에 관한내용이다. 하지만 여섯번째 법칙은 외형적인 법칙을 이야기한다. 맛있는 음식도 맛깔나게 보이는 그릇에 담겨있을 때 더 빛이 난다. 아무리 좋은 컨텐츠도 전달되는 방법에 있어서 지루하거나, 관심을 잃게 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간단하고 명료한 것이 좋다. 하지만 기억에 오래 남기 위해서는 핵심 정보를 이야기라는 그릇에 잘 포장해서 전하는 것이 좋다. 특히 그 이야기가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면 더 효과가 좋다.
인간의 사고는 정보단위가 아니라 이야기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293p)
시험공부를 할 때 이야기 법칙은 아주 효과적이다. 중학교 과학시간, 광물의 종류에 대해 배웠고, 무르기 정도에 따라 암기를 해야했다. "활석, 석고, 방해석, 형석, 인회석, 정장석, 석영, 황옥, 강옥, 금강석" 이 단원을 배우며 과학선생님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한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옛날에 활을 아주 잘 쏘는 석방형이라는 사람이 있었어. 이 사람이 동네에 살던 인정없는 석황이라는 사람을 강금했대." 이 이야기 하나로 광물 암기는 끝났다.
내 책에도 중간중간 내가 경험했던 이야기, 다른 책에서 참고한 이야기들이 있다. 책을 읽으신 분들의 리뷰를 볼 때도 이러한 이야기가 섞여있는 본문은 확실히 이해도가 높고, 잘 읽혔다고 한다. 내 글은 수험서에 들어가는 글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확한 핵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느낄만한 이야기의 형식을 빌어 글을 써야한다. 조금 더 사례 중심, 이야기 중심의 글을 썼어야 했다.
오늘도 수많은 책과 글이 탄생하고 소멸한다. 이 중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들은 얼마 안된다. 치열한 경쟁의 사회에서 내가 노력하고 애써 쓴 글이 살아남아 독자들의 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컨테이져스의 여섯가지 법칙을 고민하고 적용해야만 한다. 독자가 내 글을 읽는 순간 다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의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제발 내 글 좀 읽어주세요'라고 애처롭게 말하지 않는 때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