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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래파파 Jul 12. 2019

법대 위에 차려진 따뜻한 밥상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3년전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 일대 사건이 있었다. 현직으로 법원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판사님이 팀장으로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내가 있는 팀에...

            

아니 도대체 왜??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혹자는 방산분야 경력을 쌓아서 향후에 방산전문변호사가 되기 위해서 온다고 했다. 혹자는 법원에서 더이상 자리가 없어서 밀려난 것이라고 했다. 여러가지 설(說)이 정말 많았다. 향후에 여쭤보니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커서 도전하신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분은 아직도 지금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


판사말고도 특이한 이력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작가! 소설을 이미 몇권이나 집필한 현직작가였다. 그래서 팀장님으로 부임하신다고 했을 때 쓰신 소설을 찾아 읽었다.


독도를 두고 일본과의 분쟁이야기를 다룬 소설이었다. 소설이지만 현실을 참 잘 반영하였다. 푹 빠져서 읽었다. 어떤분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함께 2년여를 근무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글의 힘에 대해서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부임하시자 마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글로 표현해서 쓰셨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하는 일의 정의가 되었다. 몇년간 일을 하면서 막연히 알고 있었던 내 업무가 실체가 되어 나타났다. 그 때 처음 알았다.


글에는 엄청난 힘이 있구나...

글로 쓰는 순간 실체가 되는구나...




팀장님께서는 판사시절 겪었던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묶어 책을 펴냈다. 법정이야기이다. 

내가 겪은 #정재민 팀장님은 마음이 참 따스한 분이다. 판사시절의 경험을 옅봐도 그 글에 따스함이 묻어나온다. 


법정이야기는 언제들어도 재미있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재미있는 것 같다. 당사자로 그 자리에 서면 얼마나 두렵고 떨릴지 생각하기도 싫다. 법정에 좋은 일로 가는 사람은 없다. 단연코 없다. 모두가 억울하기 때문에 분노하기 때문에 법정에 간다. 그렇게 모인사람들을 데리고 재판을 진행하는 것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책 중간중간에 삽화가 나온다. 이 그림에 눈길이 오래 갔다. 재판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모두 가난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다. 판사가 앉아있는 법대는 한없이 높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판사가 재판 받는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다면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232p)


법정드라마에서 가장 명장면은 법정에서 판사, 변호사, 검사, 증인 등등이 모여 치열하게 변론을 하는 장면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판결문 쓰는 시간이다. 최근 아주 재미있게 읽은 #문유석판사 의 #미스함무라비 에서도 판결문을 쓰는데 큰 고민을 하는 판사들의 모습이 나온다. 판결문 한문장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판결문을 작성한다.


판결문을 많이 쓰다보면 글쓰는 실력이 늘지 않을까? 라는 고민을 해봤다. 얼마전 기회가 있어서 팀장님께 여쭤봤다. 단박에 손사래를 치신다. 판결문은 정해진 틀에 따라 사실관계를 나열하는 것이기 때문에 글쓰기 실력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셨다. 


학부 때 법을 전공했고, 법조인이 되고자 로스쿨도 한때 준비했었던 사람으로서 법정이야기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높은 법대 위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한 판사의 고민을 전해들으며, 내가 만약에 법조인이 되었다면 어떻게 생활했을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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