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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래파파 Sep 09. 2019

힘 빼고 읽는 글

인연-피천득

 글을 쓰고 싶어서 앞을 보고 달렸다. 어떻게 하면 좋은 내용을 좋은 그릇에 담아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있어보이는 정보를 잘 전달하고, 멋진 사진을 넣어서 글을 써보기도 했다. #씽큐베이션 #잘팔리는글쓰기 를 통해 못난글 피하기도 배웠다. 쉼없이 달렸다. 1주일에 1권 서평을 써야하기 때문에 계속 읽고 썼다. 경쟁속에서 살아가는 경주마와 같이 서평안에 긴장감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결승점이 거의 보이는 10주차, 피천득 작가의 '인연'을 접했다. 국어 교과서에서 뵈었던 그분을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났다. 글쓰기에 대한 내용도, 잘 팔리는 것에 대한 내용도 아닌 '수필'이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었다. 책을 읽으면 뭔가 정보가 남아야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책을 대하면서도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이맛에 수필을 읽는거지' 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천득 작가의 글은 온화했다.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글과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나는 이야기 속에 아무런 거부감 없이 무방비로 빠져들었다. 할아버지가 조근조근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글은 이렇게 힘을 빼고 써야하는거야' 라고 말하며 아무런 정보도, 아무런 형식도 없이 글은 흘러갔다. 



1. 수필은 마음의 산책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것이다.15p


 피천득작가의 글을 읽으며 아침 이슬이 촉촉히 내린 새벽녁, 푸르른 나무들이 가득한 어느 숲길을 걷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필은 문학작품으로서 어떠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도, 주장을 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그저 자기의 생각을 소소하게 적어내려가는 것이다. 글을 돗보이기 위한 어떠한 장치도 없이 말그대로 담백하게 써내려갔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통해 작가와 함께 차분하게 산책을 했다. 분주하고 바쁜 일상과, 좋은 글을 써내려 가겠다는 치열함도 잠시 잊고 여유 가득히 걸었다. 이전까지 읽었던 책들에는 무수히 많은 인덱스 표시가 붙어있다. 서평 쓸 때 언급할 내용, 참신하게 얻은 아이디어 등 다양한 것들을 표시했었다. 하지만 인연을 읽어내려가면서는 인덱스표시가 없다. 책의 내용을 내것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탐욕스러운 독자의 모습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갔다. 작가의 푸근함에 빠져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많은 양의 글을 읽었다. 



2. 수필의 재료는 모든것


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16p



 한권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없다. 그저 하나의 소재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과거의 기억, 인연, 사랑하는 딸, 부모님, 소재는 끝이 없었다. 한가지 소재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국어교과서에서 봤던 '은전한닢'의 글이 있다. 중국 상해에서 우연히 목격한 한 사건을 기록했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이 돈 한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이 처절한 고백은 비단 중국에 살고 있는 거지만의 고백은 아니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나, 그리고 우리도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채 그저 높은 곳을 향해서 달려만 가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저 저 자리에 한번 올라가보고 싶었습니다.'라는 어리석은 고백을 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주위를 살피고 경계해야한다. 


 글을 쓸 때 무엇에 대해서 글을 써야할지를 항상 고민한다.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다. 이제는 머리속에서만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서 주위를 돌아보며 소재를 찾아야함을 배울 수 있었다.



3. 수필은 독백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형식이다.16p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인연을 읽으며 몇가지 더 마음에 와닿는 글이 있었다. 딸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표현한 '서영이'이다. 딸을 키우는 아빠로서 딸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걷고 싶다. 121p


 지금은 어려서 마냥 아빠를 따르지만 어느 순간 아이가 크면 아빠보다는 친구를, 그리고 연인을 더 찾을 때가 올것이다. 그 때 아이와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축복이 내게 주어질지 나도 잘 모르겠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작가도 소원이라고 표현했으리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날, 피천득작가와 함께한 산책이 끝이 났다. 하지만 여운이 길게 남았다. 수필의 매력에 빠졌다. 글을 읽으면서 정보를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차분한 마음으로,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을 찾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러한 글을 쓰길 소망하며...




#씽큐베이션 #잘팔리는글쓰기 #체인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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