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공무원의 일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원래 적응하고 다니고 있던 직장을 나와 새로운 환경에 던져지는 것은 처음부터 일을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다.이미 그려진 그림이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하얀색 종이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이미 기존 조직에 적응이 되었고, 그곳에서 처리하던 일처리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 와서 새로운 일을 배우려니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었다.
신입은 아니지만 신입처럼 자리에 앉아있노라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 조직에서는 내가 신입이지만, 나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전혀 다른 분야의 업무를 대하니 같은 공무원이지만 각자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공무원은 다른 주제를 가지고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었다. 통일부는 통일을 주제로, 산업부는 산업이라는 주제로, 교육부는 교육이라는 주제로 비슷한 일을 한다고 인식했다. 하지만 부처마다 고유의 업무가 존재했고, 그 업무는 다른 곳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일례로 방위사업청에서는 원가산정이라는 업무를 한다. 일반적으로 상품에는 시장가격이 존재한다. 경제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적정한 시장가격이 형성되고 그 시장가격에 의해서 물건이 거래된다. 새우깡 하나는 마트에서 1,000원에 거래된다. 시장에서 가격을 그렇게 정했고, 소비자는 아무런 의심없이 새우깡을 1,000원에 사먹는다.
하지만 무기체계에는 시장가격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기체계 자체가 시장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수요자는 대한민국 정부. 오직 한곳이다. 공급자도 몇몇의 인증받은 방산업체 뿐이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요독점의 시장이다. 그렇다면 시장가격이라 표현하는 균형가격도 존재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 정부에서 가격을 통제한다.
무기체계의 가격을 매기는 것을 바로 원가산정을 통해서 한다. A라는 무기를 만드는데, 원료는 얼마가 들었고, 인건비는 얼마가 들었고, 회사 운영에 필요한 돈은 얼마가 들었는지를 따져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가격을 산정한다. 이 산정된 가격이 A의 가격이 된다.
다른 부처에 있을 때는 이러한 업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국방분야에 와 보니 시장의 특성상 원가 업무를 해야만 했다. 이러한 괴리감 때문에 초반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다. 물론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아주 잘 적응하고 잘 다니고 있지만...
공무원의 다양성을 다시한번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고, 비슷한 일을 한다는 오해를 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인사, 예산, 감사 등 공무원이라면 모든 부처에서 하는 공통의 업무가 있는 반면에 부처의 특성상 보유하는 특수업무가 있다는 것도 반드시 기억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