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벽 2시의 답장과 7시의 이모티콘
어느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의 일이다. 그 학교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많기로 유명한 학교 중 하나였다. 경제적으로 꽤 여유가 많았던 학부모들은 학교로 찾아와 자기 자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교사와 학교를 향해 소리치는 일이 많았었다. 그럴 때 가끔 만나보는 학부모들은 묘하게도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선민의식 같은 게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사건 사고도 무지하게 많이 발생하던 그 학교는 학생부장을 맡고 있던 내게는 매일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창밖은 가느다란 빗줄기가 조용히 내리던 퇴근을 앞둔 어느 오후, 전화기 너머로 규원(가명)이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교하던 규원이를 같은 반 승규(가명)가 뒤에서 우산 뒤 손잡이로 낚아챘고, 이에 뒤로 넘어진 규원이가 분을 참지 못해 주먹을 휘둘렀다는 내용이었다. 원인은 승규의 장난이었지만, 결과는 쌍방 폭행이다. 원인 제공은 승규가 했지만, 어쨌든 학폭법상 쌍방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이건 중학교 1학년 남학생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그날의 결과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조사를 시작했다. 승규의 대답은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냥 장난이었는데요?” 비가 온 상태라 물기 흥건한 아스팔트 바닥에 친구를 내동댕이친 행위가 그에겐 그저 심심풀이 장난이었다. 규원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승규의 만만한 표적이었다.
조사를 마칠 무렵 급식실에서 소동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아이들에게 집에 가면 오늘 있었던 일을 부모님께 하나도 빠짐없이 말씀드려야 해! 알겠지? 선생님이 오후에 전화할 테니까 다 말씀드려야 한다!"라고만 전하고 아이들을 교실로 돌려보냈다. 당시엔 ‘학교장 종결제’가 없었기에 정식 학폭위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고지하고 급히 급식실로 달려갔다.
폭풍은 퇴근 후에, 집에 도착한 후에 몰아쳤다. 규원이 어머니는 절차대로 진행해 달라며 차분히 수긍했지만, 문제는 승규 어머니였다. 밤 9시가 지나 걸려 온 전화기 너머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 애들끼리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무슨 학교폭력이니 뭐니 하는 거예요? 우리 애가 무슨 범죄자라도 돼요?” 설명은 필요 없었다. 내 말은 단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자기 아들은 절대 그럴 애가 아니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전화기 너머로 새어 나오는 고성에 옆에서 듣고 있던 우리 어머니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대화가 어려울 것 같아 "내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새벽 2시. 잠결에 울린 진동 소리에 눈을 떴다. 승규 어머니의 문자였다.
[지금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아침에 학교 찾아간다는 걸 겨우 말리고 있어요. 우리 집안에는 현직 교사도 있고 검사도 있습니다. 법대로 하고 싶으면 해보세요. 우리 승규도 진단서 끊어서 내겠습니다.]
분명한 협박이었다. 장난이라던 아까의 태도는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규원이의 폭행으로 아들이 다쳤으니, 진단서를 끊어 맞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의 협박성 문자에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출근해 승규를 불렀다. 역시나 승규는 부모님께 본인이 한 행동의 아주 일부분만 그것도 본인이 잘못한 것은 쏙 뺀 채, 규원이가 먼저 때려서 방어만 했다고 거짓말을 늘어놓은 상태였다.
부모는 교사처럼 중립적일 수 없다. 자식의 말이 곧 진실이고 법이다.
“승규야, 네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무척 곤란해졌단다. 네가 쓴 진술서 복사해 줄 테니 집에 가서 부모님 사인 받아 오너라.”
상황이 반전된 건 그날 오후 7시였다. 승규 어머니에게서 두 번째 문자가 왔다. 태어난 이후 그렇게 많은 이모티콘이 섞인 문자는 처음 보았다.
[선생님^^ 어제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오해했네요…. 아이 말만 듣고 실례가 많았습니다. ㅠㅠ]
기가 찼다. 진술서에 적힌 아들의 실토를 확인하고서야 태도를 바꾼 것이다. 법대로 해보라던 기세는 어디 가고, 이제는 가급적 좋은 방향으로 끝내고 싶다며 나긋나긋한 이모티콘 뒤로 바짝 몸을 숨겼다. 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다음 날 규원이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어진 승규의 '장난을 빙자한 괴롭힘'에 분노하며 무조건 절차대로 진행하길 원하셨다.
“우리 아이도 처벌받아야지요. 그렇지만 그냥은 못 넘어가겠습니다.”
이어 승규 어머니와 통화했다. 전화는 금방 연결됐고, 목소리는 어제와 딴판이었다. 너무나 차분한 말투와 가벼운 웃음까지 장착하고 있었다. 나는 전날 설명해 드리지 못한 싸움의 원인과 초등학교 때부터 반복된 괴롭힘의 패턴을 자세히 설명했다.
승규 어머니는 이제야 태도를 바꿔 규원이 어머니와 통화하고 싶다고 사정했다. 하지만 규원이 어머니는 단번에 거절하셨다. 승규 어머니는 쌍방 처리되면 규원이도 손해인데 왜 굳이 학폭위를 여느냐며 한탄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쌓인 규원이의 상처는 '장난'이라는 가면을 벗겨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학폭위가 열렸고, 규원이와 승규는 차이는 있었지만 어쨌든 처분을 받았다.
이후 승규를 불러 ‘장난이라는 가면이 상대방에게는 얼마나 무서운 공포가 되는지’를 여러 차례 가르쳤다. 승규는 규원이에게 진심 어린 손 편지를 건넸고, 아이들 사이의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새벽 2시의 협박 문자와 저녁 7시의 이모티콘. 그 몇 시간 사이의 표정과 목소리 변화. 승규는 편지로 반성했지만, 승규의 어머니는 반성했을까? 아마 그녀에게 이 일은 그저 ‘운이 없어 걸린 일’ 정도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교사가 정말 힘든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다. 자식의 잘못 앞에서도 눈을 감고, 상황이 불리해지면 즉각 가면을 갈아 끼우는 어른들의 일그러진 민낯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아이들을 지키겠다며 늘 어떻게든 서로가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내가 혼자 삼켜야 하는 것은 어른들의 역한 가면 놀이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날 아무도 학생부장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