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그들은 늘 ‘장난’이라고 말했다: 그 위험한 착각
이 이야기는 PART 7. 3장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교직 생활 중 만난 많은 학교 중 유독 기억에 남는 한 신도시 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당시 그 학교는 학업성취도가 항상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교육열이 뜨거운 곳이었다. 학교 주변은 형편이 넉넉하고 소위 ‘방귀 좀 뀐다.’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면 충분히 학교 차원에서 조정 가능해 보이는 사안도, 학부모 간의 자존심 싸움과 힘겨루기로 번져 결국 양쪽 모두가 상처뿐인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과에 불복해 학교를 상대로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일도 예사였다. 그때부터 나는 문제를 키우는 주체가 학생이 아니라 ‘학부모’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기 시작했다.
문제적 행동을 자주 일삼는 진호(가명)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부잣집 아들’로 통했다. 녀석은 매우 자유분방했고, 세상 걱정 하나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문제는 ‘장난’의 수위였다. 진호의 장난은 잦았고, 그 수위는 괴롭힘을 넘어 폭력으로 보일 만큼 과했다. 수업 방해와 지시 불이행으로 여러 교사에게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느끼는 품행은 이미 ‘매우 나쁨’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리기에 어떻게든 처벌보다는 입에 침이 마를 때까지 상담 중심의 지도를 반복하던 중이었다.
내가 보기에 진호는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형성되었어야 할 옳고 그름의 기준을 잘 숙지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았다. 가정 역시 문제를 바로잡기보다는 상황을 적당히 덮으려 했고, 부모들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진호에게 더 애정을 갖고 다가가려 노력했다. 적어도 그날, 민수(가명)의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민수는 또래에 비해 체격이 작고 왜소하며 조용한 남학생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최근 들어 민수가 학교에 가기 싫어하며 울기까지 하는데, 그 이유가 같은 반 진호의 ‘장난’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진호의 행실을 알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진호를 불러서 따끔하게 혼내고 사안이 심각하면 학폭위에 회부하여 처리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 문제를 또 ‘장난’의 범주 안에서만 보고 있었다.
다음 날, 학교에 오지 않으려는 민수를 설득해 학교 내 조용한 공간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동안 진호가 했던 일들을 적어보라고 했다. 민수는 A4용지 앞뒤를 빼곡하게 채워 내려갔다. 그 내용을 읽는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해 학생의 ‘선도 가능성’과 ‘교육적 지도’라는 허울 좋은 명분에만 매몰되어 정작 피해 학생이 겪었을 지옥 같은 고통의 시간을 외면했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진술서의 내용은 참담했다. 여학생들이 있는 교실이나 복도에서 진호는 민수가 지나갈 때마다 원치 않는 부위의 신체 접촉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이는 분명 성추행에 해당할 소지가 높다.
체육복을 입은 민수의 바지를 뒤에서 갑자기 내려 속옷을 노출하게 한 일도 여러 차례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교실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벌어졌다고는 믿기 힘든 비상식적인 신체 노출과 강압적인 행위들이었다. 차마 글로 다 옮기기조차 참담한 내용들이 A4 용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학생들 사이의 장난이라고 보기에도 이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명백한 인권 유린이자 성폭력이었다. 나는 즉각 사실 확인에 들어갔다. 진호는 일부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대부분의 행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역시나 이것이었다.
“그냥 장난이었어요.”
그날 오후, 민수의 부모님께 진술서를 전달했다. 자녀가 겪은 일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 부모님은 경찰 신고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셨다. 이어 진호의 부모님께도 학폭위 개최 사실을 알렸다. 내가 진호의 부모였다면 처벌을 떠나 피해 학생 측에 무릎이라도 꿇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호 어머니의 반응은 짧은 “알겠습니다”가 전부였고, 대신 아버지와 통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통화에서 들려온 진호 아버지의 목소리는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선생님, 남자애들끼리 장난 좀 친 걸 너무 크게 만드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한쪽 말만 듣고 그쪽 편만 드시는 것 같은데요 “
”아닙니다. 아버님! 진호도 대부분 본인이 한 일이라고 인정했습니다. “
”애들이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닙니까? 우리 때는 다 그러면서 컸잖아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이런 장난은 한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차갑게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법대로 처리하세요.”
그들은 여전히 이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아마 이전처럼 학교를 압박하거나 적당히 넘어가면 될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더 이상 ‘장난’이라는 말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일을 겪으며 나는 또 한 번 분명히 깨달았다. ‘장난’이라는 말은 가해자가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패이자, 때로는 피해자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가장 잔인한 흉기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