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0. 시작은 사건이다

0장. 대도 Y를 구하라: 아이의 인생을 훔치지 않게 하는 법

by 용T

아주 오래전 모 중학교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그곳은 조손 가정, 한 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이 내가 거쳐온 다른 학교들보다 유독 많았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Y도 다문화 가정 겸 조손 가정의 아이였다.

Y의 가정사는 시린 구석이 많았다. 타국에서 온 어머니는 Y가 아주 어릴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간기능 악화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칠순이 다 된 조부모님이 아이를 키우고 계셨지만, 생계와 간병만으로도 벅찬 그분들에게 사춘기 손자의 마음까지 살필 여력은 없어 보였다.


Y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에 꽤 근육질이었다. 운동 신경이 좋아 농구를 즐겼고, 평소에는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 당시 상담교사를 통해 복지 대상자 명단을 파악하여 Y의 사정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늘 마음 한구석에 그 아이를 담아두고 있었다.


사건은 평온하던 교실에서 시작됐다. 체육 시간이나 이동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서 현금이 없어진다는 신고가 근래 여러 번 잇따랐다. CCTV 대수가 많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고화질에 고성능인 시절이 아니라 범인을 잡기란 쉽지 않았다. 주번이 문단속을 철저히 해도, 방송을 통해 수 차례 주의를 줘도 돈은 계속해서 사라졌다. 어느 한 학급만이 아니라 2학년과 3학년 교실 몇 군데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 피해 금액은 어느덧 37만 원까지 불어났다. 학생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고, 작은 돈이라 할지라도 도난 사건 임에는 틀림없었다.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는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이면 일부러 경찰관이 관내 순찰을 하듯이 조용히 2, 3학년 교실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고 복도에서 Y를 마주쳤다.

“Y야 수업 시간에 왜 돌아다니니?” “네. 선생님 허락받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겁니다.” “그래? 알겠어!”

못 믿을 학생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업이 마친 후 해당 교사에게 확인해 보니, 정말 허락을 받고 다녀온 것이 맞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교사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Y는 자기가 장이 뭐 안 좋다며 자주 화장실에 갑니다.”

순간 느낌이 싸했다. 일단 “감사합니다!”로 답을 마쳤다.

다음 날 아침, 2학년 2반에서 또 도난 신고가 접수되었다. 희한하게도 지난번에 도난을 당한 여학생이 또 당한 것이었다. 그 반에서만 여학생 3명의 현금 7만 원가량이 사라졌다. 친구랑 마라탕 사 먹을 돈, 학원 책값, 올리브 영 갈 돈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번 털렸을 때와 같은 학생들의 자리였다. 그렇다면 범인은 피해 학생의 자리가 어디인지, 누가 평소 현금을 들고 다니는지까지 꿰뚫고 있다는 뜻이었다.


범인이 2학년일 확률이 높아졌다. 그날 오후, 퇴근하지 않고 당직실에 앉아 15일간의 CCTV를 모두 돌려보았다. 충격적 이게도 범인으로 예상되는 학생이 보였다. 그 학생은 CCTV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카메라가 가까이 비추는 곳은 피하고, 희미하게 아주 멀리 비추는 학급 앞에서만 움직였다. 분명 수업 시간이었고 나는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앞, 뒷문이 잠겨 있자 복도 창문 가장 높은 곳까지 단숨에 올라가 문을 열고 교실로 침투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잠시 후 그 학생은 창문이 아니라 대담하게 뒷문을 열고 나왔다. 추적 끝에 저 멀리 어렴풋이 뒷모습만 보이는 영상을 찾아냈고,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 생각이 스쳤다.

‘어! 저거 Y 걸음걸인데?’

나는 그것이 Y의 걸음걸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Y는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형에 달리기도 잘하고 여러 운동도 잘한다. 무엇보다 걸음걸이가 특이하다. 약간 무릎을 덜 펴면서 걷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아이만의 특유한 리듬이 있다. 한눈에 Y임을 알 수 있었지만, 화질이 나쁜 영상 만으로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형사 절차에서도 자백에는 증거가 필수다. 나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증거는 채취했지만, Y의 자백을 직접 듣고 싶었다. 다음 날 Y반 체육 시간, 운동장에서 축구 수업을 하는 Y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지켜봤다. 나는 1000% 확신했다. 복도를 걷던 그 학생과 Y는 동일 인물이었다. 수업이 마치고 Y를 살짝 불렀다.

“Y야, 수업 마치고 선생님한테 좀 들렀다 갈래?”

“네, 무슨 일로 그러시죠?”

“뭘 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네. 알겠습니다.”

이때 이미 Y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경찰 밥을 몇 년 먹었는데, 내가 틀리지 않을 것이라 직감했다.

방과 후, 상담실에서 단둘이 마주 앉았다. 일상적인 농구 이야기로 긴장을 풀어준 뒤 본론을 꺼냈다.

“Y야, 선생님이 좀 이상한 화면을 봤는데 말이야. 나는 그 사람이 내가 잘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지금 이 방에는 너랑 나뿐이고 밖에서는 아무도 못 들어. 나는 평소에 너랑 관계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고, 너를 믿어. Y도 선생님 믿지?”

“네.”

“그러면 우리 서로 믿는 사이니까 솔직하게 말해보자. 선생님이 며칠간 CCTV를 다 찾아봤거든. 수업 시간에 복도를 다니고 다른 반 창문을 넘어가는 학생을 봤어. 선생님은 그 학생이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Y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함정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살리는 중이었다. 경찰을 불러 법적인 처벌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심폐소생을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학교에는 50대가 넘는 CCTV가 있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어떻게든 보인단다. ” (사실 낡은 학교라 20대 정도뿐이었고 화질도 엉망이었지만, 아이를 위해 던진 승부수였다.)


Y는 한동안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도 일부러 침묵을 지키며 아이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얼마 후, Y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실망 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경찰관 신분이었다면 범인을 잡았다는 쾌감에 도파민이 넘쳤겠지만, 지금 내 마음에는 ‘측은지심’이 먼저 떠올랐다. 경제적 궁핍과 부모의 부재로 인해 돈이 궁했을 아이의 사정이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그렇다고 그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기에, 나는 어두워질 때까지 잔소리를 쏟아냈다. 그 잔소리는 실상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낙인이 찍히지 않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내 고뇌의 시간이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 일이 밝혀지면 Y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다. 나는 교감, 담임, 상담 선생님에게만 사실을 알리고 비밀리에 해결하기로 했다.


첫째, 모든 피해 학생에게 금액을 변제한다. 둘째, 행동 교정을 위한 특별교육을 그만할 때까지 받는다. 셋째, 선도위원회를 열어 벌을 받되 모든 과정은 철저히 비밀로 부친다. '도둑놈'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관내 청소년 상담센터, 정신건강위원회 등과 연계해 방과 후 거의 한 달간 교육을 보냈다.

피해 리스트를 보니 22명의 학생, 37만 원이었다. Y의 할아버지는 손자의 소식에 불같이 화를 내셨다. 어려운 형편에 큰돈을 감당하기 쉽지 않으셨겠지만, Y의 병적인 행동을 고치기 위해 변상을 약속하셨다. 나는 피해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불러 “부탁이니 너희들이 도난당한 돈을 모두 변제할 테니 그 어떤 말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넘어가 달라”라고 일일이 당부하며 돈을 모두 돌려주었다.

한 달 뒤, 교육을 마친 Y를 다시 학생부실로 불렀다.

“교육받고 오니 어떻니?”

“괜찮았어요. 제가 생각이 짧았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

“돈이 궁하면 안 쓰는 게 원칙이야. 그래도 꼭 필요하면 방법을 찾아야지. 선생님은 이제 그만 말할게. 충분히 깨우쳤을 것 같아, 맞지?”

“네.”

“혹시 정말 돈이 필요하면 선생님을 찾아와 봐. 또 모르지 선생님이 알바 좀 시키고 용돈을 줄지도 모르잖아? 흐흐흐.”

“네, 히히히.”


그날 이후 Y는 정말로 '손을 씻었다'. 졸업할 때까지 Y와 단둘이 만날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이는 조용히, 그리고 성실히 학교생활을 마쳤다.


부모의 부재와 관심 부족으로 인한 궁핍함은 안타까웠지만, 잘못된 행동에 대한 교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졸업식 날, Y는 마치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 한 장을 남기고 학교를 떠났다.


아이의 인생을 훔치지 않게 하는 법은 간단하다. 그가 훔친 것을 제자리에 되돌려 놓게 하고, 다시는 그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곁에서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는 것이다. 조금은 악질스러운 내 방법은 아이의 거짓말을 들여다보는 ‘투시경’이 아니라, 끝내 말하지 못한 그 아이의 '사연'을 읽어내는 ‘돋보기’가 되어주었다.

Y가 학교 문을 나서며 보여준 그 미소가, 내가 제복을 벗고 교단에 선 이유를 또다시 증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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