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번지는 감정의 지각
“열렬한 사랑”의 상징이 된 붉은 장미가
유독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아름다움을 탐하기 위해
고통을 무릅쓰는—
욕망 때문 일지도 모른다.
가시에 찔려 흐르는 피 한 방울에 담긴 의미.
그것은 살(flesh)을 향한
원초적이고, 관능적인
에로스적 탐욕이리라.
몸을 가득 채운, 생명의 근원수.
그렇기에,
밖으로 노출되면 안 되는-
금기의 색.
“Red”
나는 레테의 강을 건넜다.
도덕도 질서도 닿지 않는 망각의 땅을 향해.
깊은 곳에 숨겨진 태초의 본능으로
보이지 않는 가장 낮고 깊은 파장을 향해.
그곳에서 마주한
감정의 형태.
꽁꽁 싸맨 천 사이로
선혈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메를로-퐁티가 이르길,
"우리는 사고하기 전에 지각하며,
세계를 보기 전에 이미 감각되고 있다."
세계는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세계가 접촉하는,
그 경계의 떨림에서 시작된다는 것.
삶은 세계 속에서
살을 타고 흐르는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 속에서 외치고 싶은 건,
내면에 숨겨진 나의 가장 솔직한 모습들,
사랑을 향한 파괴적 본능,
금기된 것들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부조리를 향한 저항.
가장 나약한 순간에서
강렬한 아름다움이 들끓는다.
피를 흘리면 기절하는 내가
피의 상징, 붉은색만 고집하게 된 이유는
단지 고통을 미화하기 위한 것도,
사랑의 찬가를 부르기 위한 것도 아니다.
이 색상만이 내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였기 때문.
살을 뚫고 지나간 감정의 조각들이
하얀 캔버스 위로 은밀하게 퍼져나간다.
이 유혹은
그 어떤 사물도,
이 세상 어떤 풍경조차도
모방할 수 없는—
오직 추상의 세계에서만
비로소 온전히 드러날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여운 끝엔-
다시,
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