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사람의 선긋기 연습
.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 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김승희, 「장미와 가시」 中
Black out
멈출 수 없는 과호흡으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공모전 1차에 당선된 그해,
밤을 새우면서 공들여 최종 결과물을 준비하던
‘그 결정적 시점’에, 나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연구실에서 앰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가 버렸거든.
왜 실려갔냐고?
고작 이별 때문이라면 믿겠는가.
밑도 끝도 없는 그의 잠수를 견딜 수 없었다.
최악의 조합 -회피형과 불안형의 만남-은 파국이었다.
떠나가버린 그 사람에게 연연하지 않고
내 것을 지켜 낼 수 있기엔
20대 중반의 나는 미숙했다.
이별의 상실이 커리어의 결정적 순간마저
삼켜버리게 두다니,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떠나간 사람을 잊지 못해
삶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놓쳐버린 셈이다.
만약 이 상황이 친구의 일이었다면
이렇게 말해줬을 테지.
“고작 지나갈 인연으로 네 미래를 망치고 싶어?
제발 정신 좀 차려 “
안타깝지만 내 일이 되니 통제불능이었다.
모든 일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도망쳤다.
더 이상 괜찮은 척하기 지쳐버렸다.
사소한 감정으로 넘기기엔,
난 감정적 교류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으므로,
그 당시 제일 사랑했던 이에게
‘감정적 갑질’을 당하니 탈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감정표현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서운한마음, 질투, 원망..
감정을 상대방에게 내비치는 순간,
모두가 도망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탓에
불안이 항상 찾아왔다.
이 감정을 내비치면,
또다시 혼자 남게 되는 거 아닐까?
그 불안이 괜한 걱정이길 바랐는데,
항상 현실이 되어버린다.
도대체 사람들은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다가오는 걸까.
나는 사실 유치하고, 서툰 사람인데.
그들은 무엇에 실망해서,
그토록 쉽게 등을 돌리는 걸까.
감정이 닫히니,
한동안 그림을 그릴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백지를 보면 막막한 내 연애사 같아서.
다른 이들의 삶을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내 것이 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에.
이별은 예술의 원동력이라기엔
너무 진부하게 느껴진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필 잡는 게 두려워졌다.
여백이 공포스러웠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다시는 못할 것 같아서 불안해질 때마다
더욱 멀리 도망쳐버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지인의 위로와 조언이 나를 멈춰 세웠다.
단순히 생각해.
힘들 땐, 너무 잘하려 하지 마.
그냥, 좋아하는 거에서 가장 쉬운 것부터
시작해 봐.
좋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것 중에
정말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본다.
첫 번째,
프리즈마색연필을 꺼냈다.
붉은 계열에 여전히 손이 먼저 간다.
두 번째,
방치해 둔 닳아버린 색연필들을 반복적으로 깎는다.
그 단순한 반복은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세 번째,
집 앞 홍제천을 산책했다.
굉장히 느린 걸음으로, 울면서.
네 번째,
굉장히 느린 걸음으로, 울면서,
화방에 가서 손바닥 만한 스케치북을 샀다.
굉장히 작은 사이즈로.
다섯 번째,
굉장히 작은 사이즈의 스케치북에
짧은 선들을 반복해서 긋는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여섯 번째,
아무런 목적도, 대상도 없이
스케치를 채운다.
굉장히 느린 속도로.
일기 쓰는 습관도 없던 나에게,
백지에서 목적 없는 짧은 선들을 반복해서 긋는 방식은 내 감정을 기록하는 일종의 의식(ritual)이 되었다. 그 선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도, 완성된 결과물을 위해 그린 것도 아니었다. 선은 반복되지만, 매번 길이도 다르고, 간격도 다르다. 매 순간마다의 리듬이 다르고, 감정의 결도 시시각각 변한다. 그 이후로, 하루에 한 장씩 짧은 선들로 구성된 감정의 구조를 기록해 갔다.
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말을 떠올린다.
그는 ’ 차연(différance)’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연은 ‘차이’(difference)와 ‘지연’(deferral)의 중의적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의미는 어떤 대상 안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것과의 차이 속에서, 그리고 시간 속의 지연을 거쳐 도달된다고 그는 말했다.
나에게 와닿았던 건,
“완전히 동일한 반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그 말은 절대 같은 의미로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같은 하루는 없다.
같은 감정도 없다.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반복은 항상 차이를 수반한다.
난 여전히 9년 전 그날 이후로도,
사랑의 실패를 반복해서 겪고
공모전에서 여러 번 낙선했으며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고
불안하고 도망치는 겁쟁이다.
김승희 작가 「장미와 가시」 속 가시처럼,
장미꽃을 피울 수도,
단 한송이도 피울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상처받는 관계를 더 이상 참지 않기 위해,
회피와 헤어짐을 권력으로 휘두르는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서로의 감정을 포용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시 투성이의 내 마음에서
다시 한번 예쁜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결국 나다운 사랑을 위하여,
반복의 연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기 위하여,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끊임없이 획(Storke)을 반복하며
감정의 구조를 기록했다.
.
.
.
그로부터 3년 후,
이를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게 됐다.
그러니, 그대, 이제 말해 주오.
삶은 가시장미인가 장미가시인가.
아니면 장미의 가시인가, 또는
장미와 가시인가를.
김승희, 「장미와 가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