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드러진 얼굴을 마주할 용기

Uncanny_음지의 감정을 조우하는 일에 대하여

by Jade


상처는 보기 싫은 법이다.
만약 이 글이 불쾌하다면,

바로 그 지점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자신의 삶도 버거운 이들에게는,

타인의 감정선까지 짊어질 여유가 없다.

우울이나 상처에 공감하고 싶어도

스스로 너무 지쳐 있기에,

상처보다는 웃음을, 불안보다는 안정된 연출을

선택하고 싶어 지는 건 본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영화의 결말이 해피엔딩이 아닐 때,

자신의 인생까지 불행해졌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는 것만큼은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판타지.

허황된 장면 속에서 내 상처도 치유되길 바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갇혀버린,

항상 밝은 미소를 장착한 채 세상을 나서는 이들.


겉으로 보기엔 ‘긍정적인 삶의 태도’처럼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결국 내면의 깊은 상처를 외면하려는

회피적 태도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과연 내면의 곪은 감정을 외면하는 게

진정 나를 조우하는 방법일까.

SNS 속 타인의 행복을 소비하며 대리만족 하는 게

진정 나를 위하는 일일까.

무의식적으로 타인과 비교하는 자신을

자각하지 못한 채 우리의 영혼은 점점 시들어갈 뿐.

형편없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바쁜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을까.


문드러진 얼굴을 마주할 용기.

그 용기 없이는, 끝내 타인의 스토리만

소비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방식이 누군가에게는

적절한 삶의 방식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이었다.


환상에서 벗어나

감정의 음지에 있는 것들을 기록했다.

그늘에 머문 감정들,

스스로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들

—언캐니(uncanny)적 표현을 통해,

숨겨놓은 것들을 가감 없이 꺼내보려 한다.

소위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욕망, 질투, 분노, 완벽하지 않은 상태.

그늘에 머문 마음 또한,

내 존재의 일부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


추상과 형상 사이의 그 어딘가.

무의식 속의 감정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통해,

나조차 꺼내놓기 힘든 감정의 그림자들을

조용히 추적해 나간다.

내면에 깊게 숨어버린 어린아이를

끄집어내기 위한 도전인 셈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즐겨 썼던

자동기술법(automatic writing)을 바탕으로

감정의 층위를 표현한다.

누군가는 감정적 폭발을,

누군가는 섬뜩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당신이 평소에

외면했던 감정을 한 번쯤은 두드려보게 되는 것.

그리고 내 작은 에피소드들이,

당신의 내면과 겹쳐질 수 있기를.

비뚤고 기이하게 보일 수 있는

이 그림들이 사실은 일상에 숨어 있는

상실감, 슬픔, 분노에서 비롯되었음을 함께

느껴보길 바란다.


해석의 여백이 현대미술의 매력이지만,

나약한 마음이 약점이 되는 세상이지만,


이번만큼은 당신에게 조금 더 다가가

용기 내어 고백을 해보겠다.

내가 먼저 꺼내야 당신도 문을 열기 쉬워지지 않을까.

.

.

.

바야흐로 9년 전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