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충만 바링허우의 마오 카페
“밥은 먹고 다니냐?”
이따금 안부를 묻는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아휴, 츤데레!’
다들 부럽다고 할 때는 언제고, 온통 오지로 떠난 장기 여행자의 끼니를 걱정하는 문자다.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할 텐데, 먹는 게 신통찮아 보낼 인증숏이 마땅치 않았다. 갖은 재료로 만든 여러 요리를 한 상에 올려 나눠먹는 중국식 음식 문화. 하지만 풍요 속 빈곤이라고, 나 홀로 여행자는 덮밥이나 면으로 한 끼를 때워야 할 때가 많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커피였다. 차(茶)의 나라 중국에도 카페는 숱하게 있으니까. 심지어 리장 고성 가장 외진 마을 바이샤에도 서울 유명 로스터리 카페에 뒤지지 않는 마오 카페가 있다.
‘이런 정치적인 카페가 다 있나! 나 같은 정치 덕후인가?’
처음 카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크게 오해를 했다. 중국에서 ‘마오’라고 하면 보통은 마오쩌둥(毛泽东: 모택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리장 거리를 다니다 보면 마오쩌둥의 상징과도 같은 팔각모를 쓴 나시족 할머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나시족 전통 복장에 팔각모를 쓴 기묘한 조합도 많은데, 다른 소수민족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어쩌다 나시족 할머니는 패션 테러리스트가 된 것일까? 몇 번을 참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친 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표준어를 못 하는 할머니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못했지만, 자신도 전부터 쓰던 전통 모자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전통은 ‘대장정’ 시절 시작된 것이었다.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 홍군이 장제스의 국민당 군과 싸우면서 18개 산맥을 넘고 24개 강을 건너 산시성으로 혁명 근거지를 옮기기까지 이어진 1만 5,000km의 행군. 대장정은 그 과정에서 전국 각지의 인민을 만나고 민심을 규합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초석이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
홍군 부대 일부가 서남부 리장에 당도한 것은 1935년 3월이었다. 오랜 행군으로 굶주리고 남루했던 병사들에게 나시족 사람들은 계란과 건조 식량을 나눠주고 옷을 수선해주기도 했다. 병사들은 장정의 일손이 필요한 곳에서 주민들을 도우며 끈끈한 정서적 관계를 맺게 되었다. 리장을 떠나던 날, 가진 것 없던 병사들은 감사의 표시로 홍군 모자를 주민들에게 남겨주었다고 한다. 여성이 집안일을 주로 돌보는 곳이니 한정판 기념품은 당연히 여성의 차지였을 터. 그렇게 나시족 할머니는 홍군에 대한 기념과 애정으로 반세기 동안 팔각모를 착용해왔다. 색상도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그 전래마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만, 스타일만은 변함없이 단번에 마오쩌둥의 홍군을 연상시키는 팔각모 그대로다. 후대에 의해 선전 목적으로 부풀려진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홍군 대장정의 핵심을 이야기로 기가 막히게 풀어낸 정치 프로파간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이샤의 마오 카페에서는 홍군 대장정과 관련된 어떤 힌트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실내를 둘러보니 유난히 고양이 그림이 많다.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 사진도 보였다.
‘집사구만. 고양이를 뜻하는 마오(猫, 묘)였네.’
섣부른 결론을 내리려는 찰나, 카페 간판을 보니 한자가 달랐다. 토끼를 뜻하는 마오(卯, 묘)다. 알고 보니 작명법은 단순했다. 사장 마오의 성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물론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발음으로 이름을 붙인 것은 사장의 의도된 전략이라고 한다. 내가 거기에 제대로 말려들어 홍군 대장정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 셈이다.
마오 카페는 조그맣지만 바이샤에서 제법 힙한 카페다. 여행객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가게 곳곳에 걸려있는 주옥같은 카피는 지나치던 사람의 발걸음도 멈추게 한다.
“Don’t compare your life to others. There’s no comparison between the sun and the moon. They shine when it’s their time.”
재치 넘치는 카페 사장 마오는 광시성 난닝에서 온 이민자다. 평생 썩은 이빨만 들여다보며 살기 싫어서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이곳저곳 떠돌다 리장에 정착했다. 실험 정신 뛰어난 얼리어댑터에 한정판 에어조던에 환장하는 나이키 신발 덕후, 예의 없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싫다고 가게 문까지 늦게 여는 자아 충만 빠링허우(80后, 80년대생)다. 자신이 만든 커피 맛에 대한 자부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루구후 근처에서 장사할 때는 자기 때문에 주변 카페가 모두 망했다는데, 팩트 체크할 길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곳에선 특이하게 따뜻한 카페라테를 투명 언더락 잔에 내온다. 먹어보지 못했지만 칵테일도 잘 만든다는 소문이 있다. 그런데 영업시간이 ‘사장이 일어나면 문 열고 해 지면 닫는다’고 공지돼 있다. 실제로 6시만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칵테일은 도대체 언제 먹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마오 카페는 먹을 만한 빵집이 드문 리장에서 처음 발견한 뱅 오 쇼콜라 판매점이기도 했다. 시골에서 이걸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그걸 찾는 나 같은 사람이 꼭 있다. 몇 번 주문했더니, 어느 날은 공짜로 하나를 줬다. 친구 서비스라고 한다. 마오 카페는 동네 힙스터들이 매일 모이는 사랑방으로, 벽 한쪽에는 단골손님의 전용 컵도 주렁주렁 걸려있다. 자주 와서 마오 사장의 마음속 친구가 되면, 이렇게 할인과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양팔, 양다리에 문신이 가득한 외모를 보고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졌던 것인지, 빵을 처음 받은 순간 ‘오래된 것을 내 입에 재고 처리하는 건가?’라고 잠시 생각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알고 보니 삼합회 같은 문신의 정체는 더욱 반전이었다. 처음 길렀던 고양이 이름, 부모님 사랑해요 같은 ‘차카게 살자’류 메시지가 새겨져 있는 거란다.
모닝커피를 마시겠다는 극성 손님 등살에 마오는 평소보다 일찍 문을 열고 영업 준비를 시작했다. 아직은 햇살이 따갑지 않은 오전 10시 30분,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노천 좌석에 앉아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었다.
“늦은 오후의 태양광선 속에서 한 광경이 전개되었다. 그리고 일순간 그의 폐 속에 남아 있던 숨을 깡그리 앗아가 버렸다. 먼 아득한 곳, 시계의 끄트머리에 빙하로 장식이 된, 눈 덮인 산맥들이 연면히 가로놓여 있었으며, 광대한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산맥들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면서 대기권 전체에 걸쳐 있었으며 반쯤 미쳐버린 천재의 붓으로 그려진 인상파 그림의 배경을 방불케 하는, 험악하기 짝이 없고 야한 색조를 나타내는 서쪽 지평선과 융합하고 있었다.”
- 제임스 힐턴, <잃어버린 지평선>
작가가 묘사에 따라 윈난·티베트 설산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잠시 숨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더니, 소설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은 옥룡설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더 충만한 아침, 마오의 카페라테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밥이요? 커피까지 잘 마시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