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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Feb 01. 2020

커피 시조를 찾는데 신부님이 왜 나와요?

전덕능 커피 기념관

바이샤에 마오가 있다면 수허에는 전덕능이 있다. 바이샤에서 수허로 옮겨온 날, 늦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카페인 금단 증상을 해소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중국 음식 평가 사이트에서 수허구전 1위를 차지한 카페, 전덕능 커피 기념관(田德能咖啡纪念馆). 한국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선생 같은 분인가? 사장 이름이 전덕능인가? 상호도 호기심을 자아낸다.


유명 관광지 청룡교(青龙桥)에서 서쪽으로 도보 1분 거리지만, 간판도 문도 소박해서 요란한 상점에 눈이 팔렸다가 입구를 지나치기 십상이다. 오후 3시 개점, 저녁 6시 30분 폐점. 영업시간에서도 포스가 느껴졌다. 카페는 직원 없이 시크한 사장님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오후 3시 2분에 첫 손님으로 입장. 사장님은 생두가 든 포대를 막 뜯는 참이었다. 방해가 되지 않게 테이블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사장님은 로스팅 기계를 작동시키고는 돌아와 주문을 받았다. 주문을 마치고 나니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좁은 2층 복도의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그제야 카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연식이 느껴지는 전통 가옥 두 채가 직각으로 놓여있었다. 상점가 뒤, 겨우 20미터 안쪽인데 외딴 사찰에 온 것 같이 조용했다. 앞 건물 기와지붕 위에 무성하게 자란 풀마저 고즈넉함을 더했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니 통나무 벽에 ‘중국 커피의 시조’라는 인물의 흑백 사진과 소개가 붙어있었다. 전덕능은 중국에 커피를 처음 들여온 인물인가 보다. 기념관이라기에는 어설픈 전시물이지만, 1층으로 내려가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람, 외국인이다! 게다가 신부님?



중국 커피의 시조, 프랑스인 신부 전덕능


19세기 아편전쟁과 청프 전쟁으로 청나라는 서구 열강과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체결했다. 그 영향은 조정에서 멀고 먼 서부 윈난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1887년 10월 윈난 동남부 멍즈가 강제 개항된 것이다. 접경 국가 베트남을 식민 지배하던 프랑스 세력이 윈난으로 대거 진출했다. 이 무렵 선교를 위해 중국 땅을 밟은 프랑스 선교사 알프레드 리타르드(Alfred Lietard, 1872~1912)도 그중 하나였다.


중국식 이름 텐더넝(田德能, 전덕능), 그는 교구의 명에 따라 다리(大理) 동북쪽 빈촨(宾川)의 오지 마을 주쿠라(朱苦拉)에서 포교 활동을 하게 되었다. 마을 사람을 규합해 작은 성당도 지었다. 커피를 즐겨 마셨던 전 신부는 현지에서 원두를 조달할 생각으로 성당 옆에 아라비카 품종의 커피나무를 심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 대륙에 처음 식재된 커피나무였다. 청나라 제11대 황제 광서제 30년, 서기 1904년의 일이다. 어떻게 커피 묘목이 국경을 넘어 윈난에 오게 되었는지, 정확한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몇 가지 설을 두고 논란이 있다.


그런데 ‘중국 커피의 시조’ 전덕능 신부는 어떻게 리장 카페의 상표가 된 것일까? 신장위구르 출신 한족으로 젊은 시절 음악을 했던 우거는 2007년 리장에 와 작은 카페를 열었다. 당시 가게 이름은 지금과 달랐다고 한다. 2012년 그는 우연히 주쿠라 마을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호기심에 사로잡혀 전덕능 신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적잖은 책과 사료를 찾아보았고, 2014년에는 승합차를 빌려 직접 주쿠라까지 찾아갔다. 한 세기가 흘렀지만 전덕능 신부의 흔적은 선명했다. 그가 지었다는 옛 성당도 주쿠라에 남아있었다. 100년 넘은 커피나무도 있었다. 길이 험해 외지에서 진입조차 힘든 오지, 천 길 낭떠러지가 도처에 있는 이 산촌에서 촌부들은 원두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도시인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커피가 일상화된 시골마을이라니! 리장에 돌아온 우거는 카페 이름을 바꿨다. 그간 수집한 전덕능 신부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면서, 주쿠라식으로 윈난 커피를 선보이고 있다.


전덕능 커피 기념관의 대표 메뉴는 주쿠라식 ‘철주전자 커피’다. 분쇄한 윈난산 아라비카 원두 분말을 철주전자에 물과 함께 넣고 직접 끓여내는 방식이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는 이슬람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었는데, 지금처럼 다양한 커피 추출 방식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커피 가루와 물을 함께 끓이는 '끓임식(Boiling)'이 유일한 추출법이었다. 터키를 통해 프랑스에 커피가 전파되면서 함께 전달된 추출 방식이 프랑스인 신부를 통해 윈난에도 도입된 흔적인 셈이다.


고체연료가 다 연소되고 가루가 가라앉을 때쯤 사장님이 머그컵을 들고 와 커피를 부어주었다. 쓴맛이 강한 철 주전자 커피는 이 집의 명물 와플과 같이 먹으면 찰떡궁합이다. 커피는 리장의 일반적 카페에 비해 조금 비싸지만, 커피 신부의 특별한 스토리와 이색적 추출 방법에 이끌려 사람들은 이곳에 찾아온다.


우거가 전덕능 신부 이야기에 이끌려 주쿠라에 갔다면, 나는 바이샤에서 만난 동네 지우링허우(90년대생, 90后)의 얘기에 이끌려 윈난 커피농장을 찾아가게 되었다.


도시에서의 스트레스 많은 직장생활을 참을 수 없다며 리장, 그중에서도 사람 없고 조용한 작은 마을 바이샤로 온 젊은이들이 많았다. 어느 날 동네 영상·사진 프로덕션에서 일하는 일군의 지우링허우가 내가 묵던 객잔을 방문했다. 헌책방 간판을 보고 골목에 들어섰다가 정원이 예뻐 구경하러 들어왔다고 했다. 객잔 사장 라오왕이 우려 주는 차를 마시며 저녁 내내 수다를 떨고는, 내일은 자신이 커피를 내려주겠다면서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사라졌다.

윈난 커피를 드립 해주는 바이샤의 지우링허우

다음날 아침 댓바람부터 그녀가 찾아왔다. 바리스타 경연대회 배지가 달린 앞치마를 휘날리면서. 바리스타로 변신한 그녀는 그라인더부터 저울, 드리퍼까지 모두 챙겨 와 고급스러운 드립 커피를 맛보게 해 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최근 윈난에서 시범 재배하고 있다는 원두였다. 산미가 강하면서도 맑은 맛이 나서, 아이스 라테를 만들어 먹고 싶은 원두였다. 그녀는 주쿠라 마을뿐 아닐라 전통적 차 산지였던 바오샨, 심지어 푸얼에서도 대규모 커피 재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아프리카나 남미에 가지 않아도 커피나무를 볼 수 있다고? 재미주의자로서 이런 탐험은 놓칠 수 없지!’

나는 윈난 커피농장에 직접 가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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