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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Oct 10. 2022

[참고하세요] 전염병 괴담 키우는 비밀주의

시솽반나 뎅기열과 우한의 코로나19

2020년 1월 1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湖北省武汉, 호북성 무한)에서 원인 불상 폐렴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우리나라에 보도되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사태를 심각하게 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한에서조차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단체 모임 등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심각성을 직감했다. 팬더믹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제2의 사스가 되지 않을지 우려가 컸다. 윈난 여행 당시의 경험 때문이었다.


2019년 여름 동남아에 뎅기열이 대유행하면서 천 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윈난성 남부 시솽반나(西双版纳)에도 뎅기열 감염자가 발생했다.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뎅기열은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는 감염병이다. 10월말 윈난 북부 리장(丽江)에 머물던 나는 우연히 이 소식을 알게 되었다. 푸얼차 산지를 가보겠다는 나의 여행 계획을 듣던 현지인 친구가 시솽반나에 뎅기열이 심하다며 방문을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친구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 놀러가려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더니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댓글을 단 것이다.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 병원에 환자가 넘쳐나고 있다, 이미 감염자가 수만 명이고 사망자도 수백이라고 한다, 멍하이(勐海) 지역은 출입이 차단되었다 등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위챗을 통해 전해졌다.

‘가만가만, 멍하이 인구가 33만인데 감염자가 수만 명이라고?’

뭔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팩트 체크가 필요해보였다. 우선 한국 포털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았는데, 제대로 된 기사가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해외감염병NOW’, 외교부 홈페이지에도 정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해외여행 시 외교부에서 보내주는 해외 감염병 안내 문자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한국에서 너무 먼 지역이라 그런가?’

중국 검색엔진을 뒤졌다. 역시나 거의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지역 정부 홈페이지에는 방역활동과 예방법 홍보 내용뿐이었다. 감염병 발생 정보가 제대로 공개 및 전파되지 않으면서, 진위를 확인할 길 없는 괴담들만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각자도생밖에 방법이 없다. 중국인 친구가 왜 그렇게 소셜미디어 소식을 맹신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개 정보는 없고 카더라 통신은 횡횡하니, 믿을 수 있는 지인을 통해 얻은 정보가 가장 중요해진다. 모바일 시대에도 역시 ‘꽌시(인맥)’가 중요한 중국이다. 나도 운 좋게 꽌시로 현지 소식통을 확보했다. 쑤저우에서 다실을 하는 친구 뚜이시가 멍하이에서 차 도매를 하는 복 사장을 소개해주었다. 복 사장은 자신도 상황 판단을 할 정보가 없어서 근처 병원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고 한다. 의사는 “자세한 얘긴 할 수 없지만, 상황이 좀 심각하니 외출을 삼가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듣고 겁이 난 복 사장은 곧장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모기장, 모기향, 모기퇴치제, 전자파리채까지 4종 세트를 구비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위험 지역에서 배달을 해야 하는 택배기사를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처럼 꽌시를 트지 못한 중국인 중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네이버 지식인 같은 곳이다. 

“거기 뎅기열이 심각한가요? 아이를 데리고 여행갈 계획인데.”

금방 댓글이 주르륵 달렸다. 

“심각해서 방역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 삼촌댁에서 3명이 모기에 물려 뎅기열이 걸렸고, 작은 삼촌도 감염됐어요. 병원에 사람이 꽉 찼고, 링겔 맞으려는 줄이 어마어마해요. 입원하려면 멍하이로 가야해요.”

상세히 알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욕부터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애를 데리고 놀러온다니, 미친 거 아니야?”

한 달 후쯤 시솽반나에 갈 계획이던 나는 충격을 받았다. 무작정 갔더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을 터. 

‘내 목숨은 차치하고 모국에 감염병을 퍼트리는 숙주가 되면 안 되는데.’

처음에는 사람 간 전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별생각을 다 했다. 메르스 사태가 남긴 트라우마가 제일 먼저 작동한 것이다.


다행히 11월말쯤 되니 모기가 줄면서 현지 상황이 나아졌고, 12월 초 시솽반나를 방문할 수 있었다. 멍하이 구경을 무사히 마치고 푸얼로 넘어가는 차에서 젊은 기사가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한 달 만에 일하러 나왔어요. 그동안 일이 없어 고향집에 가 있었어요. 이상하게 사람이 없더라고요. 경기가 안 좋아 그런가 여행객도 엄청 줄었고요.”

얘길 듣던 외지인 승객 세 명은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동시에 외쳤다.

“뎅기열 때문이죠!”

위험한 감염병 정보를 현지인이 더 모르는 웃지 못 할 현실이다.


뎅기열이 수그러든 2019년 11월, 이번엔 네이멍구(内蒙古, 내몽골)에서 북경으로 온 환자 2명이 흑사병 확진을 받으며 중국인들이 다시 한 번 공포에 휩싸였다. 보건 당국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여론을 달랬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흑사병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것”이라는 한 누리꾼의 말이 큰 공감을 샀다. 이 무렵 상하이에서는 한·중·일 감염병 예방관리 포럼이 개최되고 있었다. 매년 3국 보건 당국이 감염병 유행 대비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13회째를 맞는 행사였다. 그간의 교류로 협력 성과가 없지는 않았겠지만, 중국의 비밀주의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공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보였다.


2019년 12월 13일, 나는 상하이 푸동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더 둘러보고픈 곳이 있었지만 서둘러 돌아온 것이었다. 아버지의 회복세도 궁금하고, 송년회에 꼭 참석하라는 선배들 성화에 앞당긴 일정이었다. 12월 말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했으니, 돌이켜보면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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