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ice Feb 19. 2020

쇄은자, 내가 제일 잘 나가

위축된 푸얼차 시장의 새로운 활력

현지에선 푸얼차 시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인기가 한창이던 시절, 병차 한 개가 금덩이보다 비싸게 거래되는 투기 광풍이 불었다. 음용 효과에 대한 설명은 신화 같았다. ‘푸얼차를 마시면 암도 치료된다’는 과장된 이야기가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너도 나도 비싼 푸얼차를 못 구해서 안달이었다. 이런 ‘벨 에포크’를 경험한 업자들에게는 거품이 꺼진 지금이 대공황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푸얼차 시장이 위축된 근본 원인은 서구적 생활 습관 확대로 젊은 세대가 커피를 좋아하게 되면서 차 수요가 감소한 때문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윈난 현지에선 의외로 시진핑 체제에서 강력 추진된 반부패 정책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간 푸얼차가 사실상 뇌물과 같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도입되는 과정에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법 제정 이후 한우·굴비 같은 고가 농축수산물, 축하 화환 판매에 타격을 입은 농가의 원성이 커졌고, 결국 14개월 만에 법이 개정되었다. 농축수산물과 화훼에 한해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게 된 것이다. 서민경제 위축을 완화한다는 취지였지만, 한 편에서는 입법 취지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푸얼차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모양이었다.


선물용으로 주로 소비되는 보이차 병차 (출처: 한시앙)


중국에서 고가 푸얼차는 본인이 직접 마시는 용도라기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구입하는 것이란다. 직접 돈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니 부담도 덜하고, 품격까지 있어 보여서 받는 사람도 으쓱하는 선물이다. 한 때는 푸얼차 전달 장면을 인증샷으로 찍어서 공유하는 일도 흔했다. 주는 이는 둘 간의 꽌시(关系, 관계)를 자랑할 수 있고, 받는 이는 ‘나 이런 사람이야’하고 미엔쯔(面子, 체면)를 세울 수 있으니, 중국인에게 이보다 좋은 선물이 없다. 푸얼차 인기가 좋던 시절에는 명절이나 기념일 시즌에 몇 천개씩 선물세트를 주문하는 사업가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부패 척결 기치 속에 큰 손들이 몸을 사리면서 선물 수요가 줄었고, 업계는 차농과 차 산업이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기에 이르렀다. 결국 ‘전통차까지 뇌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규제가 다소 완화되었다고 한다. 이후 소비가 조금씩 되살아났지만, 호황기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둥글넙적한 병차, 벽돌모양 전차 등 일정한 모양의 큰 덩이 형태를 띄는 기존 보이차와 달리 작은 알갱이 형태의 쇄은자


시장 상황이 어렵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법, 신공법으로 만든 제품으로 제2의 푸얼차 붐을 노리는 차창도 있다. 요즘 중국에서 가장 핫한 푸얼차는 쇄은자(碎银子)다. 인공발효 숙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덩어리처럼 뭉쳐진 노두차를 다시 가공한 상품이다. 둥글 넙적한 병차, 벽돌모양 전차 등 일정한 모양의 큰 덩이 형태인 기존 보이차와 달리, 작은 알갱이 모양을 하고 있다. 사극에서 ‘은자 한 냥’할 때 그 은자처럼 생겼다고 이름도 쇄은자다. 모양이 화석 같다고 차화석(茶化石)이라고도 하고, 은자는 물론 금과도 바꾸지 않는 다는 의미로 금불환(金不换)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일반 숙차보다 가격이 비싼 고급 제품이다. 쇄은자는 맛이 깊으면서 부드럽다. 딱딱하게 농축된 알갱이 형태라 기존 푸얼차 숙차병에 비해 보관이 쉽고, 소량으로 여러 차례 우릴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마지막에는 보리차처럼 직접 물에 끓여먹어도 되고, 다구 이용이 어려울 경우에는 커피메이커를 이용해 우려 마실 수도 있다.


쇄은자 우리기 (출처: 한시앙)


특히 젊은 층에게 사랑 받는 제품은 나미향(糯米香) 쇄은자다. 누룽지 같이 구수한 냄새가 나는 제품인데, 군내가 싫어서 푸얼차를 꺼렸던 사람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나미’가 찹쌀이란 뜻이라서 ‘나미향’을 찹쌀로 낸 향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나미향은 윈난성 시솽반나 우림 지역에서 자라는 민트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라고 한다. 잎에서 고소한 찹쌀 향이 나는 허브다. 해열, 해독, 위와 신장을 보하는 효능이 있는 약초로, 이미 2천 년 전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현지 다이족은 나미향 잎만 따서 말린 차도 즐겨 마신다. 나미향은 다른 차를 만들 때 가향을 위해서도 사용되는데, 제조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나미향 잎을 분쇄해 일정 분량을 직접 차에 섞는 것이다. 나미향 소타차 같은 제품을 이렇게 만든다. 두 번째 방법은 나미향을 끓인 증기에 푸얼차를 올려서 향을 침투시킨 다음 다시 건조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이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신공법이다. 쇄은자도 이렇게 만든다고 한다.


민트와 닮은 나미향 (출처: 복 사장)


쇄은자를 처음 개발한 곳은 멍하이에 있는 차창 용원차업(龙园茶业)이다. 새 공법으로 만든 푸얼차에 ‘차화석’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시하자 제품은 비싼 값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불황이라 여겼던 푸얼차 시장에서 고급 제품으로 돌파구를 찾은 용원차업을 보며 다른 차창들도 이내 모방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품과 짝퉁의 품질 차이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차화석의 인기로 용원차업 직원의 몸값도 덩달아 높아졌고, 이들이 다른 차창으로 스카우트되면서 비밀에 싸여있던 제조법 또한 외부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덕분에 지금은 많은 소비자가 좋은 품질의 쇄은자를 합리적 가격에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기업 입장에서 보면 땅을 칠 산업기밀 누출이 아닐 수 없다.


376g에 30만원이나 하는 원조 용원차창의 쇄은자 (출처: 용원차업)


쇄은자 맛있게 마시는 법

1. 1~2인용 150cc 다구 기준, 쇄은자 5g을 담습니다.
2. 100도씨의 팔팔 끓는 물을 찻잎이 잠길 정도로 붓고 5초간 우린 후 따라 버립니다.
    세차는 발효 불순물이나 먼지 등을 씻어내는 과정으로, 위와 같이 2회 반복합니다.
3. 90도씨 이상 가능한 100도씨의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우려냅니다.
     차탕의 색이 와인빛을 띌 때가 가장 맛있는 농도입니다. 우리는 시간은 차탕의 색을 봐가며 조절합니다.
4. 3~4회째 우릴 때 가장 진하게 우러나오며, 8회 이상 반복해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연하게 드시는 분의 경우는 5g으로 2리터 정도를 우리는 분도 있습니다.
5. 남은 쇄은자는 별도의 유통기한 없이 상온에서 장기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전 15화 푸얼차 열풍으로 인생 역전한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