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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Feb 13. 2023

자발적으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다

  콰라라미디어센터는 내가 사무소 부임 초임부터 함께 동고동락하며 일하던 곳이었다. 센터 직원들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영어에 흥미를 갖고 배울 수 있도록 버라이어티 영어 콘텐츠 제작을 담당했다. 우리 사무소는 센터가 양질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한국의 방송국 관계자를 초청하여 교육을 제공하는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콰라라미디어센터를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미워하는 감정이 더욱 커져만 갔다. 나도 사람인지라 긍정적인 태도로 모든 상황을 미화시킬 수는 없었다. 센터 직원들의 노골적인 텃세, 영상 제작 실력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맡은 업무에 대한 부족한 책임감과 보수적인 태도로 인해 영상 콘텐츠 제작에 속도가 전혀 나지 않았다. 질은 둘째 치고서라도 한 편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있었다.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다양한 문제들을 회피할 수는 없었다. 싫든 좋든 간에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센터 직원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가야 했다. 이미 여러 차례의 협상을 통해 서로가 이익이 되는 선에서 타협한 결과로 그들의 텃세를 잠재우고 공존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센터 직원들은 자존심이 센 편이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칫 그들의 자존심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프로젝트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에 맞이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조심했다. 


  나 또한 내 주장과 생각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우선 그들의 부족한 영상 제작 지식과 능력의 한계를 포용하고자 노력했다. 동시에 그들이 지닌 강점과 긍정적인 잠재력을 찾아내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아프리카와의 첫 만남을 돌이켜보건대, 인종과 언어가 달라도 세상 어디에서나 진심은 통하는 법이었다. 아프리카에 머무르는 동안, 내가 먼저 진심으로 다가갈 때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언제나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우리나라는 민관협력으로 잔지바르 콰라라미디어센터에 멋진 스튜디오를 만들어주었다.

  일차적으로 센터 직원들의 영상 콘텐츠 제작 역량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잔지바르 교육부는 일선 학교에서 재직 중인 교사나 공무원들로 미디어센터를 채웠기에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소수 인력을 제외하면 미디어 분야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영상 제작 기획부터 카메라 촬영 그리고 영상 편집에 이르기까지 영상 제작 전반에 대한 교육이 수반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를 위해 한국인 미디어 전문가들이 수차례에 걸쳐 콰라라미디어센터를 직접 방문하여 현장에서 실습 교육을 제공했다. 한국인 전문가들은 센터 직원들의 역량과 수준에 맞춰 영상 제작에 필요한 업무를 배분했다. 영상 출연진에 대한 연기지도도 병행되었다. 어느 정도 감을 익힌 센터 직원들은 한국인 전문가들이 만들어준 매뉴얼에 따라 교육용 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최종 편집은 한국 전문가들의 손을 거쳐서 마무리되었다.


  2년간 40편의 영상물을 제작하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그러나 실무교육을 병행해 가며 영상을 제작하니 당연히 속도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 본부에서는 프로젝트 기한 내에 모든 영상물을 만들 수 있을지 우려를 표출했다. 정해진 일정을 맞추려다 보니 밤낮으로 영상을 제작해야 했다. 이로 인해 센터 직원들은 하나둘씩 볼멘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센터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동기 부여 차원에서 제작 수당도 인상시켜 주었다. 


  양질의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현지에서 최대한 많은 영상을 제작해놓으려고 했다. 일차적으로 콘텐츠 제작을 끝마치면 한국으로 영상물을 보냈다. 그리고 한국의 미디어 전문가들이 최종 검수해 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런 과정에서 기술적으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한국 전문가들이 현지에 왔을 때 보완을 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발생했다. 한국 정부의 방역 수칙에 따라 한국인 전문가가 현지를 방문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최종 현장 책임자로서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 두 가지의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나는 코로나 방역 조치가 완화되어 한국인 전문가들이 현지에 다시 방문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센터 직원들과 힘을 합쳐 현지에서 콘텐츠 제작을 마무리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매우 큰 위험 요인이 상존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한국인 전문가를 무모하게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만약 예상보다 더 늦어진다면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었다. 센터 직원들은 여전히 영상 편집을 자체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하나는 현지에서 미디어 전문가를 확보하여 센터 직원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것이었다. 나는 한국인 전문가들이 오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영상 제작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더라도 결국 문제는 최종 영상 편집을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였다. 영상 콘텐츠의 퀄리티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문제라서 한국인 전문가들의 마지막 감수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코로나 상황이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았다. 현장에서 판단할 때, 한국 방송사에서 만들어내는 수준의 영상 콘텐츠 제작은 무리였다. 영상 수준이 우리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프로젝트 기간 내에 영상물 제작을 완료하고 현지 방송국에 송출하는 것이 보다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 전문가에 의존하지 않고 센터 직원들이 자체적으로 직접 콘텐츠를 구성하고 편집 작업까지 끝마칠 수 있도록 제작 역량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센터 직원들이 제작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어찌 됐든 간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이방인인 우리는 현지에서 철수해야 했다. 따라서 우리가 아프리카를 떠나더라도 센터 직원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지역사회의 미래 세대들을 위한 영상 콘텐츠를 계속해서 만들어가야만 했다. 센터 내부의 현실과 갑작스레 악화되고 있는 코로나 상황은 나에게 빠른 결정을 재촉했다. 아무런 기약 없이 무턱대고 외부의 도움만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 스스로 지금의 위기를 헤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센터 직원들을 모아놓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공유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내 얼굴을 보더니, 그들은 약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말문을 열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관계로 한국인 전문가들이 이제 더 이상 잔지바르에 오지 못할 거예요. 이제부터 그들로부터 받은 도움의 손길은 잊는 게 좋을 거예요.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진정한 미디어 기관으로 독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여전히 영상 제작에 있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현지 전문가를 섭외하도록 할게요. 우리끼리 힘을 합쳐 열심히 해봐요.”


  한국에서 지어준 콰라라미디어센터의 방송 시설과 장비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하드웨어는 이미 갖추고 있었다. 우리에겐 하드웨어를 활용해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의 역량과 경험이 부족할 뿐이었다. 나는 긍정의 언어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었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탄자니아 국영방송사가 아니에요. 탄자니아를 넘어, 아프리카를 넘어, 우리가 경쟁해야 할 곳은 영국 공영방송사인 BBC와 알자지라 방송국이라는 걸 기억해 주세요. 언젠가 그들이 우리의 영상 제작 과정을 꼭 취재하러 오도록 다 같이 힘을 모아요.”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거대한 꿈을 안고 살아가자는 심정으로 말했던 것이었다. 콰라라미디어센터의 경쟁사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국이 될 것이라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한마음으로 박수를 쳤다. 물론 지금 당장 다다를 수 없는 목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직원들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이 흩뿌려진다면 먼 훗날에 그런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현지에서 센터 직원들의 영상 제작과 편집을 도와줄 미디어 전문가들을 수소문했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여러 명의 영상 전문가를 섭외했다. 탄자니아에서 어린이 교육용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주아프리카(Juu Afrika)‘라는 회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리고 잔지바르의 대표적인 민영방송사인 잔지바르케이블방송국과도 미디어 협력을 약속했다. 


  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탄자니아의 미디어 전문가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했다. 영상 제작 역량부터 애니메이션 기획 역량까지 심도 깊은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 주었다. 전문가들은 현지인의 관점에서 영상을 구성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조언과 생산적인 피드백을 공유해 주었다. 센터 직원들도 교육 내용을 소화하려고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시간이었다. 


  확실하게 이전과는 차이를 보였다. 영상을 제작해 나가는 과정에서 좀 더 적극성을 띠었다. 영상 제작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여전히 영상 편집은 더디기만 했다. 센터 직원들이 영상 편집 담당자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상 제작은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최종 결과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도 센터 직원들에게 제작 수당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센터 직원들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었다. 현재의 좋은 팀워크를 해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잔지바르 교육부에 영상 편집이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인력 보강을 요청했다. 2명의 추가 인력이 보강되었다. 영상 편집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나는 센터 직원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찾아 지속적인 실무교육을 아끼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수많은 악기가 각자의 소리로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센터 직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영상 제작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센터에서 제작한 영상물을 다 같이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형 화면을 통해 우리의 영상물이 힘차게 재생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움직이는 영상물을 응시해 보지만, 화면이 뿌옇게 보였다. 영상 화면에 내 두 눈동자를 매달아 놓을 수가 없었다.


  지난날의 힘든 기억들이 화면 속 영상물을 통해 자꾸만 투영되어 나타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센터에서 자체 편집까지 끝마친 영상물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아프리카 땅을 떠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왔다. 센터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같이 힘을 모아 영상을 제작한 시간과 노력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영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대형 화면을 통해 시연된 한 편의 영상물은 감미로운 선율과 화려한 영상미를 자랑했다.


  탄자니아의 여러 방송사를 통해 우리의 영상 콘텐츠를 송출하기로 합의했다. 방송사들과의 방송 송출 협상은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방송 제작 단계에서부터 다양한 방송국 관계자들과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용 영상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현지에서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이 미비하다 보니 해외 드라마나 영화를 편성하여 방영할 정도였다. 따라서 애니메이션과 현장의 생생한 촬영 장면을 접목시킨 우리의 영상물은 방송사들의 관심과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결국 탄자니아 전역에 우리의 영상물이 방영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센터 직원들은 이제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니다. 그들의 열정만큼은 프로다.

  이제는 우리가 혼신의 힘을 쏟아 만든 영상물을 많은 사람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만이 남았다. 우리 사무소는 TV와 라디오 매체를 통해 방송 홍보에 집중했다. 다양한 홍보 수단을 동원해서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방송 홍보 포스터와 차량용 스티커를 제작했다. 선거철이나 볼 수 있는 길거리 홍보차량을 활용하고 대형 옥외 간판에 광고를 진행했다. 국가기관의 협조를 받아 잔지바르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며 프로그램을 홍보했다. 


  TV 방송 시간에 맞춰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켰다. 아는 얼굴들이 TV 화면을 통해 나타났다.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지난날의 노고를 보상하는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TV 속 진행자가 나를 향해 마치 ’고생했어. 고맙고 미안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방송용 교육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을지 사소한 걱정과 근심을 안고 지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가 불러온 환경 변화는 우리를 더욱 힘들게 했다. 방송 제작은 미루어지는데 한국인 전문가까지 현지로 올 수 없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였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잔지바르 내에서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 제작 파트너십을 강화했다. 결국 한국에서 제공한 방송 시설 장비를 통해 기술을 익혀가면서 현지의 방송 환경과 문화에 맞는 제작 역량을 적절히 결합시켜 현지화에 성공한 것이었다.


  이제는 센터 직원이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 하나의 팀을 이뤄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제 우리의 경쟁 상대는 BBC 방송국입니다.”


  다 함께 모인 회의실에서 그들을 향해 내가 건넨 아낌없는 찬사였다. 어떤 방식으로든 센터 직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어쩌면 4~50대로 주축을 이룬 센터 직원들에게는 방송 제작 자체가 크나큰 도전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방송 제작자로서 아마추어 티를 완전히 못 벗었지만, 우리는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했다. 이를 계기로 국제기구와 해외 정부로부터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한 비용을 지원받을 정도로 성장했다. 


  일취월장하는 센터 직원들의 영상 제작 실력이 아프리카의 미래 교육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 믿는다. 그들이 만든 교육콘텐츠가 아프리카 교육에 희망의 날갯짓으로 멀리멀리 퍼져가기를 바란다. 언젠가 그들의 훈훈한 소식이 BBC 방송국을 통해 전해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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