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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먼아프리카 Feb 21. 2023

아프리카에서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실질적 민주주의보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국제사회의 강한 압박에 따라 복수정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정권교체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집권 여당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오던 정치인들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나 권력과 탐욕을 놓지 못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기도 한다. 성숙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눈치를 외면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아프리카의 정치인들은 그렇게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케냐와 탄자니아에서 대통령 선거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하게 되었다. 먼저 케냐의 정치 이야기를 짧게나마 공유하고자 한다.

 

  케냐는 42개의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라 전역에 걸쳐,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토착 부족이 형성되어 있다. 부족에 따라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 성향이 뚜렷하게 갈린다. 그렇다 보니,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치권력을 추구하기 위해 부족 간의 합종연횡이 이루어진다. 케냐는 부족주의를 통해 극단적인 정치세력화를 추구해 나가는 패거리 정치문화가 발달해 있는 곳이다.


  2007년에 치러진 케냐 대통령 선거는 정치적 부족주의가 극단적, 비극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여야 간에 개표 부정 시비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1,0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고 6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부족 간의 갈등도 점차 격화되어 갔다. 그로 인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반대파 부족을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졌던 것이었다.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다 보니 케냐에서 활동하던 다국적 기업들도 하나둘 철수를 시작했다. 케냐로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긴 상태였다. 


  나는 정치적 비극으로 인해 분열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싶어 케냐를 방문하게 되었다. 현장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현지 친구와 케냐 나이로비의 시내 한복판으로 향했다. 순간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갈등의 현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평화로웠기 때문이었다.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우면서도 차분해 보였다. 


  현지 신문 기사의 1면을 장식하고 있는 참혹한 비극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덤덤하게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외국인들의 인기척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시내는 케냐인들로만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현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는 나를 이따금 힐끗거렸다. 나는 그들의 눈길을 애써 외면했다. 눈을 마주쳐서 행여라도 그들의 심기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격앙된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나를 언제든지 공격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케냐의 여야 지도자가 권력을 분점하는 중재안에 서명했다. 마침내 갈등과 반목의 정치가 봉합되었다. 어제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수많은 외국인들이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발적으로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애꿎은 시민들의 희생이 지속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국가 전체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동이 난무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지나친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스스로가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다양한 시각과 눈을 가질 수 있는 힘은 현장에서 길러진다는 걸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히 그곳이 아프리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잔지바르 펨바 섬은 폭풍 전야와 같은 정적만이 감돌뿐이다.

  다음은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탄자니아에서 일하는 동안 경험한 대통령 선거 이야기다.


  탄자니아는 케냐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탄자니아는 1964년 본토인 탕가니카와 잔지바르(운구자와 펨바라는 두 개의 큰 섬과 작은 열도들로 이루어진 섬나라)가 합병하여 탄생하게 되었다. 120여 개가 넘는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초대 대통령인 ‘줄리어스 니에레레’의 포용적 리더십 덕분에 부족주의에 기반한 정당정치가 발을 들이지 못했다. 모든 부족을 ‘탄자니아인’이라는 이름으로 통합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탄자니아는 무늬만 민주주의 국가일 뿐이다. 탄자니아 탄생 당시의 집권 여당이 현재까지도 사실상 권력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통합 과정에서 잔지바르 사람들은 자원과 권력의 배분에 있어 철저하게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연유로 잔지바르는 탄자니아 내에서 가장 야당성이 강한 지역이 되었다. 99% 이상이 무슬림으로 이루어진 잔지바르는 절반이 넘는 인구가 기독교인으로 이루어진 탄자니아 본토와도 종교적 색채가 다르다. 


  역설적으로 잔지바르 지역의 고유한 특성은 정치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대통령 선거철마다 집권 여당은 잔지바르 야당 인사를 탄압하고 잔지바르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였다.


  본격적인 탄자니아 대통령 선거 운동의 막이 올랐다. 주탄자니아 한국대사관에서도 대통령 선거 전후로 발생할 수 있는 소요사태를 대비하여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장기 체류 중인 한인들조차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외부 활동을 극도로 자제했다. 사무소 현지 직원들도 대통령 선거 일주일을 앞두고 시장에서 식품과 생필품을 사다가 비축해 두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집에서 간단히 요리할 수 있는 라면과 스파게티를 사두었다. 


  대형스피커를 매달은 여당과 야당의 선거 유세 차량들이 도로를 활보했다. 스피커를 뚫고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선거 로고송이 치열한 선거 캠페인 경쟁에 불을 지폈다. 선거 운동은 집권 여당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집권 여당은 탄자니아의 유명 가수들을 선거운동원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히트곡을 부르면서 유권자의 관심을 유도하여 유세 현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들이 바람잡이 역할을 충실히 끝내면 대통령 후보가 화려하게 등장했다. 잘 짜인 각본대로 연출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이에 질세라 야당 또한 지지층이 강력한 잔지바르에서 치열한 선거 유세를 펼쳐 보지만 모든 면에서 정부 여당에 뒤처졌다.


  선거 자금이 풍부한 여당의 입장에서 거리의 모든 부랑자들은 훌륭한 선거운동원이었다. 여당의 선거 티셔츠로 말쑥하게 차려입은 부랑자들을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덥수룩한 수염과 기름으로 떡진 머리는 온데간데없고 완전 새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당에서 나눠준 옷과 음식의 대가로 부랑자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을 제공했다. 중요한 정치적 선거를 앞두고 거리의 부랑자들이 이방인을 전혀 귀찮게 하지 않은 숨겨진 이유였다. 육체적 배고픔을 달래고자 하는 부랑자들과 한 표가 아쉬운 정치 세력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탄자니아에서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위해서는 집권 여당에 당원으로 가입하고 당원증을 교부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여당의 당원증이 없이는 공무원이 될 수 없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야당 지지성향이 강한 잔지바르 공무원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여당의 당원으로 가입되어 있었다. 그들은 선거 기간 동안 야당을 연상시키는 색깔과 비슷한 옷도 입지 않을 정도로 행동에 조심조심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웬만하면 자신의 정치적 의견과 색깔을 드러내지 않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특히 이방인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정부에서도 이방인의 동향을 매우 유심히 살펴보는 때라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가끔씩 가까운 현지 지인이나 공무원들에게 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탄자니아의 정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이따금 그들 앞에서 집권 여당의 정치 행태를 비판했다. 친야당 성향의 지역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용감한(?) 행동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내 의견에 반박하기보다 묵묵부답으로 답을 대신했다.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는 채팅이나 영상 통화가 가능한 모바일 메신저 앱이 모두 차단되었다. 유튜브도 시청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빨리 선거가 끝이 나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중 잔지바르 사람들 사이에서 야당 지지자가 군인들의 군홧발에 짓밟히는 영상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매체를 통해 공유되었다. 우리 직원들은 자신들의 친구이자 이웃사촌이 탄압받는 동영상을 나한테도 보내주었다. 


  영상이 널리 유포된 다음 날에는 산발적으로 항의 집회가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살고 있는 시내의 집 근처에서도 최루탄 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집 옥상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니 군인들을 실은 군용 차량들이 거리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당 지지자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바리케이드 설치 작업도 계속되었다. 선거 전날까지도 시위대를 해산하는 경찰의 총성과 최루탄 냄새가 잔지바르의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했다. 


  막상 선거일이 되니, 고요와 침묵만이 거리를 지배했다. 쥐 죽은 듯이 너무나 조용했다. 인터넷에 원활히 접속할 수 없다 보니 집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선거 투표를 하러 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통금 조치가 내려졌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 날 아침에 필요한 음식을 사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이용하여 시내로 나갔다. 여전히 시내의 모든 음식점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상태였다. 거리에는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이 발발할 수도 있기에 나는 즉각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잔지바르 펨바섬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목숨을 걸고 선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회의원 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예측대로 여당이 압승했다. 집권 여당이 내세운 대통령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들이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되었다. 집권 여당의 압승 선언과 함께 인터넷 통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야당의 대규모 항의 집회는 없었다. 그렇게 탄자니아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라는 전쟁을 치르고 또다시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준비했다.


  아프리카에서 한 국가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은 현대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역사적 사건들을 공부하다 보면 그 나라의 정치문화와 국민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그들의 지역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삶과 문화는 아프리카의 현대 정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잔지바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분노와 슬픔의 응어리를 한가득 안고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거가 아니었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들 삶의 역사적 특수성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마음속 응어리를 투표로 다 쏟아내 보건만 기득권 세력의 거대한 벽은 너무나도 공고하고 교활했다.


  선거가 끝난 후 선거 운동에 부랑자들과 외출을 자제했던 시민들 그리고 숙소에 머물고 있던 관광객들이 거리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선거 풍경이 생소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가치가 억압받고 있는 잔지바르의 현실을 바라보며 무척 안타까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소신과 의견을 갖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해방감과 자존감은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오는 게 아닐까? 인간다운 대접을 받은 부랑자들은 배고픔을 잊을 수 있어서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꼈을까? 아니면 자신의 정치색을 숨겨가면서까지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을까? 내가 그런 상황에 부딪혔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한 국가 안에서도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때 우리는 정신적으로 아름답고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인간적으로 보람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탄자니아 속의 작은 나라인 잔지바르에서 삶의 터전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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