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에 이은 놀란의 두 번째 역사 영화인 <오펜하이머>는 시간 축의 배치 방법에서 덩케르크를 닮았지만, 지향점이 완전히 다르다. 덩케르크가 세 개의 시간 축을 오려 붙여 하나의 무대/대지로 전진하게끔 하였다면, 오펜하이머는 청문회를 전면에 배치하고 이전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으로 불안정한 대지를 형성한다. 두 청문회에서 제시되는 단서들은 과거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형성된 이미지들은 편집을 통해 종합돼 하나의 층계를 이루고 있다.
영화의 중축을 이루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뉴멕시코로 그 층계를 드러내 오펜하이머의 대담함을 묘사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사막이라는 무대를 이용해 층계를 드러냄은 최근작 중<3000년의 기다림>이 연상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상징으로 모자란 데가 없는 카우보이를 상상하게끔 만드는 아메리카의 위대한 대지, 뉴멕시코의 사막에서 오펜하이머는 밤하늘을 본다. 수많은 별이 화면에 묘사되는데, 이 수많은 별을 묘사하는 효과란 영화가 미시세계의 입자 운동을 묘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이것은 미국 사회의 보수성이라 할 수 있는 ‘혁명 완료의 대지’의 전설과 배치되는 오펜하이머의 좌익적 개혁/혁명적 활동의 구조와 매우 흡사해 오펜하이머의 진취성을 부각할 뿐만 아니라, 좌익 성향에도 불구하고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일원임을 보여준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펜하이머가 한 일을 나열함을 보자. 좌익 과학자들의 보수적이며 진취적인 기묘하고 모순적인 프로젝트를 책임자 오펜하이머 개인과 동일시한다.
예를 들어 옛 애인 진의 죽음과 오펜하이머의 어쩔 수 없는 외면은 사회주의자로서의 개인인 오펜하이머가 미국의 이야기로 변모하는 과정의 일환이다.
히로시마 원자탄 투하 이후 기념 연설은 본작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라 할 수 있겠다. (영화 내의 묘사에 기초하면) 국제적이고 진취적인 좌익적 기술자들은 그동안의 역설을 맘껏 보여주듯이 ‘미국 국기’를 들고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이상한 모양새를 보인다. 곧이어 오펜하이머의 공간이 잔물결마냥 울렁이게 된다. 오펜하이머와 뉴멕시코 사막이 하나였음에 방점이 찍히는 순간이다.
종전 후 영화는 기념 연설에서 프로메테우스처럼 모든 고통과 아이러니를 감내하기로 한 오펜하이머의 행적을 따라간다. 본작은 핵분열과 핵융합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핵분열이 청문회 여성상위씬이 보여주듯 오펜하이머 개인에 대한 잔혹한 주관의 청문회라면, 핵융합은 철저한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장관 임명 청문회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 영화의 흑백 부분은 객관적인 묘사를 의미하고, 컬러는 오펜하이머의 주관임을 밝혔다. 50년대 청문회 사건의 전말로 드러난 실재했던 흑백 음모는 뉴멕시코의 거대한 환상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어느 무엇보다도 미국적인 이야기인데도.
연이은 흑백 세계의 공격은 트루먼과의 대화가 보여주듯 아이러니한 미국의 기저 대지를 더욱 확장하고 공고하게 만든다. 모든 아이러니를 감내했기에 오펜하이머는 장관 후보자와 비공식 청문회의 강압적인 질문자가 말한 대로 영화 내의 맥락을 제거한다면 다소 모순돼 보일 여지가 충분한 인물이 된다. 핵분열에서 쪼개진 오펜하이머 개인의 요소는 불안정한 대지를 형성했고 그 불안정한 핵융합은 영화 말미에 이르러 흑백의 실재와 융합된다. 이로써 오펜하이머는 프로메테우스이자 미국이 된다.
미국의 역사학자 루이츠 하츠가 1950년대 저술한 책인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이라는 책이 연상됐다. 그는 당대 미국의 독선적인 외교적 행보와 매카시즘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 문제의식을 계기로 상술한 책을 저술하였다. 하츠는 미국이 로크의 자유주의만으로 이뤄졌기에 타국을 이해할 수 없음을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미국의 소련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범세계적 군비 확장을 경계한 오펜하이머 박사의 행보가 생각나는 부분 아닌가? 꼭 해답이 하츠의 주장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허나 본작이 최근 작품 중 국가・사회정신의 기저에 대한 가장 거대한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여담으로 사막이라는 무대가 돋보였던 영화인만큼, <덩케르크>와 <테넷>이 현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흥미로운 비평을 한 송경원의 비평이 더욱 궁금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