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아이 #1
3학년 큰아이는 오늘도 누구보다 서둘러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선다. 열 살도 십대라고, 이제 엄마와 같이 등교하는 게 부끄러운 모양이다. 같이 나가자고 붙잡아봐도 머뭇머뭇 신발을 신고 주섬주섬 가방을 맨 뒤 기어이 먼저 집을 나서고야 만다. 제 말로는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서 책을 읽다가 친구들이 하나둘 들어오면 같이 떠드는 게 낙이라나. 엄마에게 말못할 속사정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본인이 그렇다는 데에야 믿어줄 수밖에.
1학년 작은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는데 비가 내리고 있다. 투둑 투둑 제법 굵은 빗줄기다. 이런 비를 그냥 맞고 갔구나. 다시 집에 올라가 큰아이의 우산까지 챙겨들고 학교로 향했다. 작은아이를 교문 앞까지 바래다 준 뒤, 큰아이의 반 친구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마침 큰아이의 단짝, 연이가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다가 나를 보고 꾸벅 인사를 한다.
"연아, 이거 현이한테 좀 전해줄 수 있어?"
"네!"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연이는 앞의 친구를 향해 달려간다. 부탁받은 우산은 받지도 않고서. 같이 달리기를 한 끝에 겨우 우산을 건네주고 돌아서는데 도무지 안심이 되질 않는다. 어쩔 것인가. 우산을 전해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는 하교한 아들이 얼마나 젖어있는지-우산이 있어도 젖긴 젖는다. 푹 젖느냐 적당히 젖느냐의 차이일 뿐-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반쯤 체념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때보다 아들의 하교가 기다려졌다. 번호키 누르는 소리와 함께 설렘은 극대화되었다. 푹 젖었을까, 적당히 젖었을까...! 아들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말짱했다. 결정적으로 아들의 손에 들린 우산을 보는 순간, 나는 파안대소했다.
"연이가 우산 잘 전해줬구나!"
"응?"
아들의 반응이 이상하다.
"우산 연이가 전해준 거 아니야?"
"이거 내가 가지고 간 건데?"
"무슨 소리야? 너 우산 안 가지고 갔잖아."
"어? 그럼 누가 우산통에 내 우산을 꽂아놨지?"
진상은 이랬다.
연이는 교실에 들어가 현이의 우산을 우산통에 꽂아놓은 뒤 현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교할 때가 되어 우산통에서 본인의 우산을 발견한 현이는 으레 제가 가져왔으려니 하고 쓰고 온 것이다. 말없이 우산을 전달하는 연이나, 의문없이 우산을 쓰고온 현이나, 정말이지 환상의 케미다. 그러니 내 단짝이라지.
아무렴 어떠랴.
우산만 주면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