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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작가 Jan 28. 2021

당신은 왜 경찰이 되었나요?

내가 대한민국 경찰관이 된 사연 


뽈작가님.
당신은 왜 경찰이 되었습니까?
경찰이 된 사연을 말씀해 주시죠.


2007년 뽈작가

‘88만 원 세대’라는 용어가 있다.

2007년 경제학자 우석훈과 기자 출신 박권일이 함께 쓴 책《88만 원 세대》에서 시작된 말이다. '88만 원'은 당시 비정규직 20대의 월평균 급여였다.


나는? 내 월급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들어가 첫 직장 월급이 70만 원이었다.

1년 반을 버텼지만 1원도 오르지 않았다. 

출퇴근 시간은 하루에 3시간, 교통비만 해도 한 달에 20만 원이 들었다.

너무 비효율적이고 부당하다고 생각돼서 사표를 냈다.


두 번째 직장은 집에서 가까웠다.

출퇴근 시간은 하루에 1시간, 교통비는 6만 원.

그런데 월급은 고작 50만 원. 껄껄껄껄~~

여가활동비와 품위유지비를 빼고 저금을 해도 1년에 200만 원을 모을 수 없었다.


날 애처롭게 보던 교직 공무원인 둘째 언니가 수능을 다시 보고 교대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자기처럼 임용고시를 보라고.

그런데 다시 1년 이상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 4년을 다니고, 임용고시를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최소 6년이 걸리겠지?)


그래서 공무원 시험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하고많은 공무원 중에 목표로 잡은 건 경찰 공무원.


고등학교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의 바람이었다.

아빤 내가 군인 또는 경찰이 되길 원하셨다. 딸만 셋인 우리 집에서 군인이나 경찰 한 명쯤은 있어야 든든하실 테니까.(정작 아빠가 살아계실 때 경찰이 된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게 한이다.)


그리고 폼도 날 것 같았다. 푸른 제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가 참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당신은 왜 경찰이 되었냐"라고 물어보면 솔직히 창피하다.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이 한 몸 바쳐 대한민국을 위해 일하고 싶었습니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정된 직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폼 나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 질문을 '처음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사연'으로만 해석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경찰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 후 수험생활을 하던 도중에 "왜 경찰이 되고 싶은가, 경찰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처음 했기 때문이다.


서울 노량진 고시원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6개월이 될 무렵 첫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였다.

아.. 공부하기 너무 힘들다. 집에 가고 싶다..

합격은 할 수 있으려나? 그냥 공부 때려치우고 예전처럼 적당한 직장 구해서 살까?

내가 뭐하려고 이 짓을 하는 걸까?

내가 이 꽃 같은 시절을 포기해가며 수험생활을 하는 이유는 뭘까?

도대체 나는 경찰이 돼서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되고 싶다.

그냥.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멋지게 범인을 잡고 범죄를 소탕하는 모습보다는 소박하게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난.

안부를 묻는 경찰관이 되고 싶은 것이었다.

잘 지내냐고, 힘든 건 없냐고.


뽈작가님. 당신은 왜 경찰이 되었습니까?

안부를 묻고 싶어서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잘 지내세요? 힘든 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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