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은 도련님 재산이 있는 곳에 머무세요. 쓸데없이 추수할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며 왜 사서 고생을 하세요!”
유모가 텔레마코스를 말린다. 아버지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로 떠난 지, 벌써 스무 해. 재산을 노리고 어머니 페넬로페와 결혼하겠다는 구혼자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그가 아버지를 찾아 배를 띄우기로 결심한 직후다.
희랍인은 바다를 흔히 ‘추수할 수 없는 바다’라고 불렀다. ‘곡식을 가져다주는 대지’와 쌍을 이루는 일종의 관용어구다. 하지만 문학적 함의가 풍부한, 정말 멋진 표현이다. 청년들이 기성의 경로를 따르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유모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곡식을 가져다주는 대지’는 정직하다. 곡물은 심으면, 대지가 길러준다. 가뭄이나 홍수가 들지 않는 한, 망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땅은 노력한 만큼 답을 준다. 계절의 순환에 따라 일이 정해지고, 거의 평온한 일상이 반복된다. 흐르는 시간이 인간의 수명을 한없이 소진시킬 뿐, 이 삶은 변화가 없으니 모험이 없고, 모험이 없으니 이야기 또한 없다.
하지만 바다는 위험하다. 파도와 싸우면서 그물을 애써 던져도 ‘추수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바다에서는 예기치 못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자주 일어난다. 운명이 불안정해지고 영혼은 불안해진다. 대지에서 익힌 삶의 규칙은 바다에서 잘 통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거나, 파도가 너무 높거나, 벼락이 내려치는 등 변수가 너무 많으므로 계획을 아무리 세밀히 짜도 큰 소용이 없다.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어둠이 정신을 홀려 배를 파멸의 소용돌이로 끌고 가지 않도록 항상 북극성을 바라보면서, 바다가 물어오는 질문에 최선의 답을 하는 수밖에 없다.
바다는 늘 모험을 유발하고, 이를 견딘 이들한테 불후의 이야기를 선사한다. 최초의 영웅 길가메시 이래,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바다에 몸을 던져 인생의 비밀을 캤던가. 신드바드도, 아이네이아스도, 트리스탄도, 햄릿도, 바다로 나아가 목숨을 건 후 비로소 자신의 진짜 얼굴을 알 수 있었다.
일상을 떠나서 모험에 뛰어들어야 삶의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대지를 버리고 바다에 나서야 평범한 인간이 불멸의 영웅으로 자란다. 돌아온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와 나란히 선 채 구혼자들을 징벌하는 정의의 영웅이 되었다.
청년의 모험을 장려하지 않는 사회는 반드시 쇠락한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을 대신 추수해 주는 사회는 필연코 멸망한다. 그 사회에서는 삶의 새로운 롤 모델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사나 교수가 직위를 이용해 자녀의 성적을 챙기는 사회라니, 한국은 지금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