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의 말 001]
멀리 나아가면 땅은 평평해지다가 손바닥처럼 부드러워진다. 물론 많은 손은, 삶의 명령에 의해, 시간이 지나면서 호미, 작은 낫, 큰 낫의 손잡이 둘레에 좁게 오그라드는 경향이 있지만.
_주제 사라마구, 『바닥에서 일어서서』, 정영목 옮김(해냄, 2019)
언어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이다.
비유란 얼마나 조심스러운가.
부드러운 손바닥이라는 비유조차
함부로 쓸 만한 표현이 아니다.
삶은 얼마나 육체를 쉽게 변형시키는가.
작품을 읽다가 말고
내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손은 어느 도구 둘레에 오그라들어 있을까.
『바닥에서 일어서서』는 사라마구 문학의 초기 걸작인데, 한국어판으로는 가장 늦게 나왔다. 한 가족이 작은 수레에 짐을 싣고 고향을 떠나서 이사를 하는 중이다. 첫 부분에 나오는, 광활한 들판에 가혹하게 쏟아지는 비의 묘사가 그야말로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