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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Jul 01. 2016

전자양 -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문학으로의 음악, 또는 음악의 문학성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https://www.youtube.com/watch?v=VjGTU4tFRvo




며칠째 이 노래만 듣고 있다. 이렇게 노래 하나에 집착해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밴드 전자양을 소개한다. 딱 떨어지게 형용하기 힘든, 음악 이상의 무언가를 들려준다. 매력이 넘치는 팀이다.



전자양의 음악을 들으면서 '문학적인 음악'이 가질 수 있는 효과를 생각해보았다.




전자양. 멋들어진 밴드이름이다. 한동안 페이스북에서 유행했던 '방금 먹은 음식 메뉴와 입고 있는 하의 색깔을 혼합하면 밴드 이름이 된다'라는 얼토당토 않은 작명공식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을 , 독특하면서도 간명한 자기소개서다.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약간 코끝이 간질거리긴 하지만, 엣지있는 제목이다. 포켓몬스터 게임에서 필살의 비기로 통했던 라프라스의 '멸망의 노래'가 떠올려지지만, 기분 탓일 것이다.



무튼간에 밴드와 노래에 붙은 이름만으로도 상상이 덕지덕지 들러붙는다.





그래서 나도 붙여 보았다. '문학적인 음악'이라는 그럴듯한 타이틀을.







밴드이름 '전자양'은 필립 K. 딕의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에서 따온 이름이다. 해당 소설은 리들리 스콧의 명작 <블레이드 러너>로 스크린에 옮겨지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라는 노래제목 역시 기시감(旣視感 , Dejavu)-또는 기청감-을 준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따온 이름일테다.






이렇듯 '문학적인 음악'은, 청자의 상상이 개입될 수 있는 '문맥'을 추가적으로 제공한다. 청자의 사전지식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이는 음악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전자양은 사운드 자체가 원체 뛰어난 밴드다. 그렇지만 필립 딕의 소설을 읽었거나, 리들리 스콧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훨씬 많은 걸 즐길 수 있다. 누군가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디스토피아적 미래세계를 그린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의 세계관을 연결지어 상상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블레이드 러너>의 충격적인 영상미를 같이 떠올릴 수 있다.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의 가사는 범상치 않다. 그자체로 문학이라 할 만 하다. 하지만 다소 난해하고, 비관적인 누군가에겐 중2병스러운 가사라고 혹평을 들을 지도 모른다.



희망이란 악마의 기도 십자가는 기가 막힌 땔감
식은 몸 데우고 태우고 남은 재로 그리는 불사조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은 사람이라면, 말론 브란도와 비비안 리가 열연한 영화판을 본 사람이라면 어떨까? 급변하는 당시 미국 사회속에서 파멸로 치닫는 한 여성의 삶을 떠올린다. 문맥이 없는 상태와는 달리, 정신없이 달려가는 가사 구절구절이 원작과 잘 들어맞는 조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원래 음악이 좋고 말고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원작자인 뮤지션의 의도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대단히 여길 필요 없다.




요점은, 음악만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청자의 상상을 통해 더해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롯이 음악만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자신이 부여한 문맥을 통해 좀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밴드명이나 곡의 네이밍, 또는 곡의 가사를 통해서 말이다.





순수한 음악 자체로 원작자의 의도를 유추하고 상상해내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뮤지션은 이렇게 '문학적'인 문맥을 추가함으로써, 자신들의 의도대로, 또는 그 이상의 상상을 제공하는 음악으로 거듭나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의 손을 이미 떠난 음악이, 리메이크 되는 걸 보는 기분과 비슷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문학적인 해석은, 그자체로 각각의 변주곡같은 존재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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