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 그렇게 들어와버렸는데
잘 모르겠어. 언제부터였을까? 왜였을까.
남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 싶은 그런, 욕망을 제거한다면.
언제였을까.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서였던 것 같아.
#1 .
삼수 끝나고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쌤을 만나러 갔지.
난 너 처음 봤을 때부터 딱 기자다, 싶었는데.
스물 둘을 앞두고 있던 청년에게, 열 세살 때의 첫 인상이 그랬다는 건..
꽤 중요한 결정 요인이었을 수도 있겠어.
#2.
입대 직전. 고등학교 동창 A를 만났어. 편도염으로 끙끙 앓고 있던 때였지.
아마 뭘 제대로 삼키지도, 씹지도 못할 때였을거야.
음식은 기억이 나 . 여의도 생어거스틴.
목이 너무 아파서 그 눅진한 국물을 목뒤로 넘기는게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잘 기억나거든.
당시 A는 큰 일을 치르고 왔던 상황이었는데, 나한테 밥을 사줘야 일종의 '빚'을 갚는 거라고 했었어.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친구는 '빚'을 갚는다면서 내게 다른 '빚'을 또 줬지 뭐야.
군대 가기 전에 미래 고민을 하는 나한테 과제같은 걸 하나 안겨줬거든.
안그래도 언론고시 추천해 주고 싶었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뭐 이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기 보다는, 그와중에 좀 현실적인 충고같은.. 그런 느낌이긴 했어.
어쨌건 간에 아주 똑똑하고 사람을 잘 보는 A가 그러니까, 괜시리 기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해.
이런데는 칼같고 냉철한 친구였으니까.
#3.
오빠같은 사람이 기자를 해야지
유달리 친하게 지냈던 동기 B. 내 고민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건넸던 대답이 이랬어.
#4.
내 20대 시절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았던 H 영어학원. 특목고 입시를 준비할 당시 선생님이 새로 차린 학원이었는데, 난 여기서 참 오래도 일을 했더랬다.
원래 선생님과 굉장히 각별한 사이였기 때문에, 일하면서도 중간중간 회식을 참 많이 다녔지.
그러던 중 어느날 쌤이 건넨 한 마디가 또 훅 들어오더라고.
얘는 천상 기자야.
무슨 얘기를 하던 중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강경대군 치사 사건' 무렵이 아니냐고
다른 쌤한테 물어봤던 것 같아.
그러니까 정말 놀랍다는 듯이 한마디씩 거들더군.
"와, 얘는 이런걸 어떻게 다 안대? 너 진짜 기자 해야겠다."
뭐.. 그 사건의 시점을 생각하면 내가 그걸 인지하고 인용하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무튼 거기서 보란듯이 받아치는 원장쌤의 말은 은근히 힘이 됐던 것 같아.
얜 다 안다니까?
#5.
같이 특목고 입시를 했던 친구 C. 지금은 연락을 좀체 하지 않지만, 훌륭한 외교관이 돼있다는 사실 정도는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포일러인가?)
그 친구가 했던 말도 인상이 깊었는지, 내가 메모를 해뒀더라고.
난 너가 들고 다니던 한겨레 기자수첩이 그렇게 인상적이었어. 잊히지가 않더라.
한겨레 기자수첩이라.. 기억나. 길쭉한 기자수첩. 아마도 '제2창간'을 기념해서 줬을거다.
제2창간에는 내이름으로도 돈이 보태졌지.
이쯤부터는 내가 자소서를 어떻게 쓸지도 미리 한번쯤은 생각해봤던 것 같아.
부모님의 영향도 자기소개서에 중요할 거잖아?
어머니가 서가에 고이 보관하던 리영희의 장서.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서랍장 깊숙한 곳에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던 한겨레신문 창간호.
백두산 천지가 찍혀 있는 그 판본이 잊히지가 않아.
그때부터, 내심 언론사에서,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겨레에서 일하면 멋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특정 신문사에 대한 동경이 앞섰고, 그 경향으로 기자를 하고 싶어졌는지도.
그렇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부터는, 한겨레에 가고 싶어서 기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 어찌보면 왜곡된 선후관계는 성년이 된 이후에는 사라졌지.
정말로 이 직업을 하고 싶어졌던 거야. 그런데 왜였을까?
(사실, '정말로 이 직업을 하고 싶어졌다'는 메모를 보고 흠칫 놀랐어. 내가 이렇게 간절했던가?)
아주 순수하다고는 못하겠어. 나라는 사람. 지적허영이 강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도 강해.
그래서 한동안 교수라는 직업에도 욕심이 났었지.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선택지.
그 와중에, 내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게 기자라는 직종이 아녔던가.
#6.
기자, 와는 조금 다르려나. 그렇지만 언론인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이는 '앵커.'
(이런 말을 썼다니 지금으로선 믿을 수 없을 만큼 낯간지러운데,)
신입생 때, 서유럽사회와 문화라는 수업이 있었어. 발표를 할 일있었는데, 주제는 독일의 '연정'.
과거 있던 몇차례의 연정을 정리하고, 메르켈의 대연정. 그리고 남경필 경기지사가 제안했던 연정 안까지
스무스하게 연결해서 하나의 거시적 흐름으로 보여주었던 것 같은데. 무튼 발표 자체는 굉장히 잘 됐어. 박수갈채를 받았던 기억이 나거든.
발표를 마치고, 교수님이 장래희망을 물어보더라고. 꿈이 뭐냐고.
그리고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앵커 해 볼 생각 없어요?, 제2의 손석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중에 앵커 되면 꼭 제 이름이랑 수업 이름 기억해서 말해줘요, 방송에서."
지금 회상하면 좀 웃긴데, 기뻤어. 교수한테 그런 얘기를 들어서.
그걸 기점으로, 언론인이 되면 멋지겠다 다시한번 생각한 것 같아.
5년 전쯤 기록했던 순간의 기록. 이후에도 비슷한 말들은 쌓이고 또 쌓였고,
난 어쩌다보니, 당연한듯 언론계로 들어와버렸어.
돌이켜보면, 다들 나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줘서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이렇게 한 번 다시 초심을 곱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