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IZ의 부활에 부쳐서
법적공방끝에 사라졌던 국내 유일의 야구통계사이트 STATIZ(스탯티즈)가 최근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사이에 KBreport라는 훌륭한 사이트가 등장하긴 했으나, 스탯티즈의 공백을 완전히 메울 정도는 아니였다. 그리고 베이스볼레퍼런스(Baseball Reference)와 팬그래프(fangraphs)라는 두 통계사이트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MLB를 생각하더라도, 스탯티즈의 복구는 반가운 소식이다.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는 요즘 가장 핫한 세이버매트릭스 스탯이다. 온갖 세이버 수치들이 치밀하게 조합된 결정체이며, 선수들을 일렬로 줄세우기 가장 편리한 도구다. 통계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각종 스탯들을 배합한 보정수치이기 때문에 현재 나와있는 스탯중에서는 가장 정확하고, 직관적으로 선수들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스탯티즈는 프로야구 개막 원년부터의 WAR을 연감처럼 모아두고 있다. 절대적인 수치는 아니다. 파크팩터가 수시로 바뀌는 국내 리그에서 이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며, 야구통계 전문업체가 거의 없는 국내 실정을 고려했을 때 수비스탯을 객관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KBO 선수들의 연대기를 윤곽 잡았다는 점에서 아래의 숫자들은 분명 유의미한 수치다. 이에 대해 간단히 코멘트를 해보자면.
1. 선동열은 KBO에 내린 신이다. (누적 WAR 107.07/ 11시즌)
'일인지상 만인지하'라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솔직히 클레이튼 커쇼나 제이크 아리에타가 이 리그에 진출한다 해도 저정도의 초월적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 그만큼 80-90년대의 선동열은 리그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먼치킨이었다. 가장 뛰어났던 1986년 시즌의 기록을 144경기 체제로 전환한다면, "20"이라는 WAR 수치가 나온다. 말이 안 된다. 선수 한명이 20승을 더해준다라. 데드볼 시대의 베이브루스나 약본즈도 저정도 기록은 내지 못했다. 리그의 후진성은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는 그만큼이나 절대적이었다. 불과 11년짜리 커리어였는데도 말이다. 부상이었던 94시즌을 제외한다면, 연평균 WAR가 10남짓이다. 그당시의 경기수를 생각해보건대, 그는 진정 신적인 존재였다.
2. 꾸준히 강력했던 양준혁 (누적 WAR 87.22/18시즌)
양준혁은 리그를 지배했다고 단언하기엔 다소 어색함이 있는 선수이다. 개별 시즌 모두 타격에서 최정상급의 성적을 냈지만, 1994년의 이종범이나 2015년의 테임즈같이 리그를 혼자서 '폭격'한 시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어마어마한 누적치가 그의 위대함을 입증한다. 양준혁을 수비로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그냥 간신히 외야에 세워둘 수 있는 딱 그정도의 선수였다. 그런데도 누적 WAR가 여타 그룹과 차이가 한참 나는 역대 2위다. 통산 wRC+가 160이다. 20년의 커리어 내내 리그 평균 수준의 타자보다 1.6배나 높은 생산력을 유지한 것이다. 참고로 2015년 김현수의 wRC+가 150이다. 그의 타격이 어느정도였는지 능히 짐작이 가능하리라.
3. 송진우, 이승엽, 이종범, 박경완, 이만수, 김동주.
딱 여기에서 끊었다. 사실 이 밑으로도 통산 WAR 수치가 조밀조밀 몰려 있기 때문에 계산법에 따라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지만. 그냥 내 느낌에 여기까지 끊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았다. 이 그룹까지는 누가 뭐래도 KBO를 대표할만한 레전드급 선수들이다.
송진우(누적 WAR 72.17/ 21시즌)는 정말 꾸준했다. 꾸준히 반짝였던 선수가 드문 KBO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존경받을 가치가 있다.
이승엽(누적 WAR 68.74/ 13시즌)은 아마 좀더 올라갈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가치를 많이 깎아먹고 오긴 했지만, KBO 내에서의 순수타격만으로는 단연 1위다. 물론 누적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커리어의 마무리단계라 보기에는 마지막 불꽃을 꽤나 오랫동안 태우고 있다는 점에서 양준혁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쫓아갈 가능성이 있다.
이종범(누적 WAR 67.74/ 16시즌) 의 임팩트는 KBO 야수 중에 비길 사람이 없다. 93-97년의 5시즌 동안 시즌 WAR 순위가 각각 5-1-13-1-1위다. 심지어 95년은 방위근무때문에 홈경기밖에 출전을 못 한 시즌이었는데도. 이 기간에 쌓은 수치는 커리어 후반기를 보통의 A급 외야수정도로 마무리 지은 그를 리스트 최상단에 위치시켰다. 올시즌의 테임즈와 비견될 94년의 이종범은 더 말하면 입만 아프겠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과거의 수비 수치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만 있다면 순위가 좀더 오를 수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박경완과 이만수, 김동주도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이다. 순위 변동의 변수라면, 박경완은 20년 넘게 뛴 수비스탯이 대폭 재평가 될 수 있다는 점 (프레이밍 등등). 김동주는 잠실이라는 구장에서 커리어를 보냈기에 파크팩터의 재정산이 공격스탯의 누적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있겠다.
류현진과 강정호의 대성공으로 인해 이제 이 리스트를 새로이 수놓을만한 선수들은 대부분 상위리그로 진출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수치들만 가지고 한국 최고의 선수가 누구였는지 가리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선수보다는 해설자, 코치, 감독으로 더 친숙한 옛 스타들의 공적을 이렇게 가늠해 보는 것도 하나의 유희거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