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 돌아가는 FA시장을 보며
손승락이 4년 60억을 받았단다. 이 어처구니 없는 금액은 KBO와 NPB의 마무리 신성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우리의 FA시장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는지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객관적인 수치를 통해 분석해보자.
1.77-1.25-1.11 . 손승락이 지난 3년간 거둔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이다. (수치는 KBreport의 것을 참고했다.) 이 기간 손승락이 거둔 세이브는 각각 46-32-23으로 개수만 놓고 보면 리그 정상급 마무리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는 성적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는 불펜투수다. 세이버매트리스적 분석에서는 마무리투수가 담당하는 '9회'의 1이닝이 여타 이닝과 다르게 특수한 상황이라고 전제하지 않는다. 다 똑같은 1이닝이라는 것이다.
손승락은 3년동안 185이닝을 소화했다. 양현종,윤성환,김광현등의 정상급 선발투수가 1년동안 소화할 이닝이다. 그나마도 ERA 수치가 솔리드했던 것도 아니다. 팀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할 Late & Close 상황(7회 이후 1점차로 이기고 있거나, 동점이거나, 동점이 될 수 있는 주자가 나가 있는 상태)에 주로 등판하는 클로저의 3년간 ERA가 2.30-4.33-3.82이다. 13년은 그렇다 쳐도 이후 2년은 차마 클로저로 기용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C급 마무리다. 14년과 15년의 손승락은 거칠게 말하자면, 오로지 자신의 이름값 하나로 꾸역꾸역 투구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MLB에서 1승을 더 거두기 위한 합의된 시장가격은 대략 500~600만$이다. WAR 1당 대략 50-60억원정도인 셈이다. MLB의 하위리그임이 명백한 KBO에서 손승락이 지난 3년간 얻어낸 WAR의 합계는 4.13이다. 이를 토대로 현재의 계약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은지 계산을 해보자. 아주 긍정적으로 보아서, 다가오는 2016년에 '35살'로 시즌을 맞이할 손승락이 지난 3년간의 기량을 '그대로' 발휘해 계약기간 4년을 모범 FA의 전형으로 보낸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가 거둘 4년간의 WAR 총계는 5.5가 된다. 이를 계약금액 60억으로 나눈다.
10.9억원. 롯데가 손승락이 가져올 '1승'이라는 기댓값에 투자한 수치이다.
셈을 해보면 메이저리그 시장가의 22%정도 된다. 솔직히 생각해보자. 경기력은 그렇다치더라도, 우리의 시장규모가 그들의 1/5 근처에나 다가가는가? 분명한 오버페이다. 3.47-5.55-5.30. 4년 60억의 계약을 맺고, 연봉 15억이라는 조롱을 들으며 국내에 복귀던 한화 김태균의 지난 3년간 성적이다. 김태균은 근 3년간 15.5라는 리그 최정상급의 WAR 수치를 쌓고 4년 84억에 사인했다. 3년간 일궈낸 성과를 합쳐도 김태균의 웬만한 1년만큼도 못한 손승락은 4년 60억을 받았다. 굉장히 복잡하게 서술했지만, 요약하자면, 이건 미친 계약이다. 시장도 구단도 선수들도 모두 미쳐 돌아가고 있다.
정우람이 구단제시액 82억을 걷어차고 나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정우람은 분명 손승락보다 한급 이상 높은 리그 최고의 불펜투수다. 굳이 수치를 들먹이며 부연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인정할 것이다. 그렇지만 90억, 100억을 들여 정우람을 지르는 구단이 있다면, 손승락에 60억을 비딩한 롯데를 능가하는 바보구단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알고 있다. 선수풀(pool)이 절대적으로 작은 KBO에서 이런 오버페이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시장의 과열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FA를 지른다고 픽 소모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금쪽같은 S급 티어 유망주를 타팀에 내주는 것도 아니므로 구단의 머니게임에 불과하다. 팬들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돈싸움을 하는 것을 그저 즐겁게 관람하면 될뿐인지도 모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워지지 않는 낯선 거리감은 어쩔 수가 없다. 다가오는 시즌에도 KBO를 챙겨보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