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리드 무용론'에 대한 생각들을 더해서
흔히들 포수를 '안방마님'이라고 말한다. 그 표현에서 우리는 투수를 다독이며 게임을 풀어 나가는 <H2>의 노다 아츠시나 <공포의 외인구단>의 백두산같은 듬직한 캐릭터를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포수라는 포지션은 눈에 보이는 통계를 뛰어 넘어, 게임 전체를 좌우할만한 지배력을 가진단다.
과연 그들의 당당한 풍채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칼럼을 가져왔다. 그 다음이다.
http://www.fangraphs.com/blogs/searching-for-the-value-of-yadier-molina/
Searching For the Value of Yadier Molina
by Jeff Sullivan
※2013년 11월 16일 fangraphs.com에 올라온 글입니다. 포수 프레이밍에 대한 좋은 통찰이 담겨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번역은 제가 직접 했습니다.
몰리나는 훌륭한 타자이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는 내구성이 좋고, 그 사실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그는 블록킹이 뛰어나며 , 거기에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기록들은 그가 뛰어난 포구를 하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실들이다. 그러나 아직도 확인되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포수리드(game-calling)에서 나타나는 리더십이다.
(중략)
몰리나와 파트너일 때 투수들은 0.746의 OPS(*OPS : 타자의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값)를 기록했다. 몰리나 외의 포수와 파트너일 때 투수들은 0.757의 OPS를 기록했다. 이는 11 point(1푼 1리)만큼의 차이인데 250타석이 아니라 500 타석 이상을 상대했다고 가정하면 이 차이는 15 point(1푼 5리)로 늘어난다. 차이는 있지만 결코 크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이는 아마도 전적으로 몰리나의 프레이밍(포수가 공을 받을 때 미트의 위치를 이동시키면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기술)에 기인한 차이일 것이다. 투수들을 게임 내에서 가이드 할 때 이정도의 기록들은 그가 확실한 마법사는 아님을 보여준다. 또는 그가 마법사라고 한다면 수많은 다른 포수들도 마법사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투수는 몰리나와 함께 할 때 더 좋은 성적을 냈고, 특정 투수는 좀더 나쁜 성적을 거뒀다. 애덤 웨인라이트의 경우, 몰리나와 함께 했을 때 확실히 좀 더 효과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카펜터의 경우는 상당히 '덜'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효과가 상당부분은 BABIP(* 타구에 대한 타율을 계산하는 용어) 때문인걸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신경 쓰는 것은 전반적인 효과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몰리나 효과'는 찾지 못했다. 이 조사가 무결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약 정말 효과가 있다면 어떤 강력한 신호가 나타나야 한다.
일단 메이저 리그에 올라온 이상 그렇게까지 능력의 편차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쁜 볼배합은 존재하지만, 빅리그의 포수들은 아마도 그런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 발전함에 따라 대부분의 포수들은 비슷한 접근법에 도달할 것이다. 포수들이 서로 드라마틱하게 다른 볼배합을 외치지 않고, 당연하게도 투수들이 아직도 구종을 선택한다는 것 역시 가능한 일이다. (...) 투수들은 몰리나를 거의 흔들지 않으나, 그것이 투수들이 몰리나와 피칭을 할 때 다른 포수들에게 던지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던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략)
하지만 이 조사에 진짜 '실체'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야디에르 몰리나가 투수진을 관리할 수 있는 숨겨진 능력이 있다고 오랜 세월동안 믿어왔다. 아마도 그것은 대체로 사실이 아닐 것이며,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를 너무 띄워준 셈이다. 그는 모든 방면에 뛰어나지만, 그를 완벽한 포수로 취급하기엔,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수치들이 있다.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 엄청난 그것'에 대한 수치를 지녀본 적이 없다. 아마 그 수치는 거의 0에 수렴할 지도 모른다.
(하략)
여기서부터는 사설이 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수치화된 기록으로 볼 때, 포수 한명이 게임을 좌우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프레이밍을 통해 스트라이크 몇 개를 더 얻어올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든든한 안방마님'이 상징하는 효과는 그렇게 시시하지 않았다.
분명 좋고 나쁜 볼배합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162경기에 달하는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결국 평균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전세계에서 야구를 시작한 꼬마아이들 중에 레귤러 메이저리거가 되는 비율은 0.1%도 채 되지 않는다. 이미 그 분야에서 끝을 달리는 메이저리그 급 선수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일정 레벨 이상의 볼배합을 하기 마련이다. 툴(tool) 하나가 심각하게 모자라다면, 애초에 그 위치까지 올라올 수도 없다.
마이크 피아자가 그 좋은 예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포수 중에서도 피아자의 타격 실력은 압도적이다. 도저히 그 비교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수비를 못하는 반쪽짜리 투수라는 멍에가 씌워져 있다. 그런데 과연 그가 반쪽짜리 선수였을까?
피아자의 그런 이미지는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하다. 박찬호 선수와의 궁합이 좋지 않아서, 라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박찬호 선수는 피아자가 자신과 사인이 매번 맞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우리는 iTV 방송을 보면서 피아자의 물어깨를 수없이 탓했다.
그런데 수치로 나타나는 박찬호와 피아자의 궁합은 사뭇 다르다. 실제 피아자는 박찬호가 호흡을 맞춘 포수중 게임출장 1위(89경기), 소화이닝 2위(385.1이닝)이며, 평균자책점도 3.71로 준수하다. 박찬호의 커리어 통산 평균자책점이 4.36인 점을 생각해 보건대 더더욱 그렇다. 물어깨라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박찬호 경기에선 20회 도루허용,12회 저지로 도루저지율도 0.375이다.
그렇다. 피아자는 수비가 폐급인 선수가 아니였다. 적어도 기본은 해주는 선수였다고 우리의 기억을 정정하고 재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
놀라운 재발견이다.
fangraphs나 baseball reference에서는 선수의 defense WAR를 산출하는데 있어 포지션별로 가중치를 부여한다. 다음은 팬그래프의 수비 가중치다.
※ 162경기에 모두 수비했을 시를 가정할 경우
포수: +12.5점
1루수: -12.5점
2루수: +2.5점
3루수: +2.5점
유격수: +7.5점
좌익수: -7.5점
중견수: +2.5점
우익수: -7.5점
지명타자: -17.5점
포수의 수비 가중치를 보자. 무려 12.5점이다. 심지어 유격수-2루수-중견수의 수비가중치를 합친 수치와 같다.
흔히들 센터라인, 센터라인 하면서 키스톤 콤비와 중견수의 수비력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센터라인의 지배자는 포수다.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눈뜨고 못봐줄 정도의 수비를 구사하는 포수라면, 메이저리그에서 20년간 살아남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2000년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SK왕조. 이 중심에는 박경완이 든든한 안방마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팬들은 20승 투수와도 바꿀 수 없는 포수라고 박경완을 떠받들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SK는 박경완이 없었더라도 시즌을 잘 치러나갔을 것이다. 그정도의 전력을 구축한 팀이라면 말이다.
요즘 가장 각광받는 세이버스탯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통해 좀더 분석해 보도록 하자. 스탯티즈에서 계산한 수치를 따왔다.
SK가 왕조의 시작을 쏘아 올렸던 2007년, 팀의 주전 포수 박경완의 WAR는 3.93이였다. 같은 해에 22승을 거둔 투수 리오스의 WAR는 8.15였다. 두 선수의 가치는 두 배 넘게 차이가 났던 셈이다. 팬들의 애정은 이해하지만, 냉정히 말해 팀에 가져다 줄 수 있는 효과는 급이 달랐던 것이다. 과연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팀에 4승이 넘는 차이를 안겨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2009년에 SK가 19연승을 달성했을 때 마스크를 쓰고 있던 선수는 박경완이 아니라 정상호였다.
20세기를 뒤흔든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야디에르 몰리나와 박경완같은 리그 최고 수준의 포수라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게임을 직접 챙겨보는 팬이라면 그것을 분명히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들이, 162경기 또는 144경기라는 긴 시즌 내내 뚜렷하게 수치화될 수 있는 상수常數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
야구는 스무명에 달하는 엔트리로 한 게임을 치르는 스포츠다. 한 선수의 '무형의' 존재감이 게임 전체를 뒤집을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마법에 더 가까운 일이다.
콘텐타 매거진 M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