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내셔널스의 내셔널스파크에 가다
나를 야구장에 데려다 주오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두번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번에는 뉴욕메츠의 씨티필드 방문기를 들려드렸는데요.
진한 아쉬움을 남긴채 뉴욕에서 다음 행선지인 워싱턴 D.C.로 이동했습니다. 사실 뉴욕은 워낙 대도시고, 밤에도 여행자들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반면 워싱턴같은 경우는 날이 지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기에 이곳에 오기로 결정할 때부터 야구장에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녁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해줄테니까요.
씨티필드 같은 경우에는 지하철역에서 내리자마자 그림같은 전경이 펼쳐져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워싱턴 내셔널스의 내셔널스파크의 첫인상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신식 구장임에도 정말 특색이 없더군요. 우버(Uber) 기사 아저씨께서 경기장의 외곽에 저희를 내려 주셔서 더 그렇기도 했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나 밋밋한 느낌이었습니다.
경기장 안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내셔널스로 이적한 이래 MVP급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대니얼 머피의 초대형 사진이 프론트에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브라이스 하퍼가 나란히 붙어 있었고요.
내셔널스 굿즈 샵 앞에 바글대는 관중들입니다. 저역시 브라이스 하퍼의 져지를 사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국에서부터 했기에 보무도 당당히 들어왔지만.. 털레털레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유니폼식 저지는 전부 $170씩 하더라고요. 한국돈으로 무려 20만원 가량입니다. KBO 구단들이 판매하는 유니폼의 가격이 보통 4-5만원, 특수재질로 만들어진 경우에도 10만원을 좀체 넘지 않는걸 생각하면 좀 충격적으로 비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직구라도 해서 올 것을 .. 후회가 되더군요. 다들 아시다시피 경기장에선 유니폼을 입는게 또 맛이지 않습니까?
씨티필드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경기장 설계가 참으로 잘됐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3층, 4층에서 봐도 필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끔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처럼 그물망으로 시야를 가리지도 않기 때문에 훨씬 탁 트인 상태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안전문제랑 결부되어 있기에 단순히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지만요.
사진은 관람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상태로 미국의 국가를 부르는 모습입니다. 한국과 같은데요. 우리 역시 여기서 따온 걸까요? 스포츠 구장에서 경기 식전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국민의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그에 대한 당위성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일단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현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발투수는 메이저리그에 익숙한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이름,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였습니다. 출국하기 전에는 사실 선발로테이션을 미리 알 수 없는 노릇이라 ‘제발 슈어져나 스트라스버그 둘 중 하나만 걸리면 좋겠다’ 라고 간절히 기원했는데 다행히도 스트라스버그, 스벅군이 나와 주었네요.
데뷔 시즌 전미를 열광케 했던 그 포텐셜을 완전히 만개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래도 스트라스버그를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는 에이스 투수임에 분명합니다. 실제로 경기 내내 97mph 내외의 패스트볼을 줄창 뿌려댔습니다. 며칠전 시티필드에 등판한 메츠의 제이콥 디그롬보다 속구만은 더 빨랐습니다. 다만, 맞춰잡는 피쳐가 되지 못했기에 이닝당 투구수가 상당히 많다는 단점이 이날도 드러났습니다.
내셔널스파크 최고의 스타, 브라이스 하퍼입니다. 사실 워싱턴 내셔널스뿐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전체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배리 본즈를 연상케 하는 초월적 타격을 선보이며 2015년 MVP에 올랐고, 이듬해 주춤했다가 올해 다시금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유력 MVP 후보로 레이스를 하고 있습니다. 시카고 컵스의 크리스 브라이언트에 인기가 좀 밀린듯도 했지만 브라이언트 역시 MVP를 수상한 다음해인 2017년에 그답지 않게 부진하고 있거든요. 향후 몇년간은 둘이 선의의 라이벌리를 보이며 팬들을 즐겁게 해주겠지요.
경기장은 매진이었습니다. 다음날이 Independence Day, 미국의 독립기념일이었거든요. 사진을 보시면 외야까지 입추의 여지 없이 고나중들이 들어차 있음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가 시작하고도 한참동안 관중들이 들어왔고 3회, 4회까지도 꾸준히 입장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랏빛 땅거미가 내려올 즈음이 되어서야 경기장이 온전히 들어찼습니다.
경기는 투수전으로 흘렀고, 접전 양상이었습니다. 그렇게 고조되다가 막판에 두번 크게 요동쳤습니다. 홈팀 내셔널스가 2-0으로 앞서간 상태에서 9회초 마지막 수비 이닝에 들어섰습니다. 메츠의 선택은 대타 커티스 그랜더슨.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딱’ 소리가 심상찮더니 대타 그랜더슨의 스윙에 공이 그대로 담장을 넘어갑니다. 투런 홈런. 경기는 2-2 동점이 되었고 홈팀은 9회말 공격에 나설 수 밖에 없게 되었지요.
사진을 보시면 결과는 익히 짐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9회초에 김빠지게 동점을 허용했지만, 내셔널스가 집중력을 발휘해 9회말에 끝내기 안타로 경기를 가져갔습니다. 선수들이 다같이 그라운드에 나와 축제를 만끽하는 모습인데요. 신기하게도, 굉장히 드라마틱한 상황임에도 관중석이 비교적 잠잠했는데요. 심지어는 끝내기 안타를 쳤음에도 경기가 끝난지도 파악 못하고 멍-한 상태로 있는 관중들도 많았습니다. 지난 칼럼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메이저리그 관중들이 일반적으로 KBO 관중들만큼 경기에 몰입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목숨걸고 응원하고 노래하며 열광하는 한국 팬들이랑은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다음날이 독립기념일이었기에, 극적으로 경기를 잡은 홈팀이 (예고대로) 불꽃놀이를 선사했습니다. 사실 훨씬 큰 규모의 불꽃놀이를 기대했는데 경기장 한편에서만 불꽃이 소박하게 터져서 좀 심심했다는… 후문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보니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 속해 있는 팀들의 경기만 두 게임을 보았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워싱턴 내셔널스, 그리고 뉴욕 메츠. 같은 지구여서 그런지 나름의 라이벌리도 느껴졌고 더욱 뜻깊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직접 관람한 메이저리그 경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짧은 기획을 여기서 마치기가 약간 섭섭하네요. 언젠가, 다시 갈 일이 있겠지요.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