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의 영웅들을 기억하시나요?
<프로야구 매니저>라는 게임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가 있었다. 2010년 즈음이였을 것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게임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던 투수다. 초반에 선물로 주어지는 증정팩에서 받을 수 있는 선수치고는 능력치가 좋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매니저에서 KIA 타이거즈를 선호구단으로 고르면 진행이 좀 깝깝했다. 게임사에서는 최근년도부터 선수 데이터베이스를 차근차근 업데이트 했는데, 다들 알다시피 2000년대 중반부터 겪은 오랜 암흑기의 결과로 타이거즈에는 쓸만한 선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2009년 우승의 주역들은 너무 고급 카드였기에 현질을 적잖이 하지 않고선 뽑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07 신용운’ 카드는 각광받았다. 게임상에서 유리한 싱커와 투심이란 구질을 갖고 있는데다가 제구력 스탯이 높았으며, 나이가 어려서 유학(25세 이하 선수는 게임상에서 유학이란 시스템을 통해 능력치를 높일 수 있었다)까지 다녀올 수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초반에 이 카드의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그렇지만 07 신용운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나는 자주 씁쓸해졌다. 나뿐만 그런건 아니었을 것이다. 타이거즈를 응원하는 팬들이라면 대부분 느꼈을 감정이다.
제구력이 좋고, 싱커와 투심이라는 확실한 위닝샷이 있었고, 싱싱한 어깨를 자랑했으며, 150km 안팎의 강속구까지 뿌리던 투수
카드 한장은 선수를 생각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표현했고, 슬프게도 그 정보는 대부분 사실이었다. 어째서 기쁘지 못하냐고? 그 기쁨이 오래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젊고 싱싱했던 강속구 사이드암은 자신의 재능을 완전히 꽃피우지 못했다.
유독 07년도의 카드가 눈에 밟혔던 이유가 따로 있다. 성능이 우수해서 주력으로 사용해서만은 아니었다. 당시 신용운의 포지션은 이상하게도 선발로 분류되어 있다. 많은 팬들은 신용운을 2000년대 초중반 타이거즈 뒷문을 책임지던 중간-마무리 (또는 중무리)로 생각할 것이다. 실제로 신용운은 전천후 불펜투수로 뛰었다. 역동적인 투구폼의 사이드암이었다는 점에서 타이거즈 팬들이 가지고 있는 이강철과 임창용의 향수를 자극시키기에 충분한 투수였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이 변변찮았던 타이거즈의 불펜진을 사실상 홀로 둘러메고 달렸다.
2007년에 타이거즈는 꼴찌를 했다. 창단 이래 아홉번의 우승을 했던 명문구단은 2005년에 충격적인 8위를 처음 경험했다. 마음이 조급해졌기 때문일까. 감독 서정환은 ‘신한카드’로 불릴만큼 말도 안되는 빈도로 소환되던 신용운과 한기주, 그리고 ‘광주댐’ 윤석민의 청춘과 2006년의 4위를 맞바꿨다. 어마어마한 혹사로 일궈낸 결과였다. 그리고 한해만에 도로 8위로 돌아갔다.
3년새 두번이나 꼴찌를 하던 팀의 속사정이 어땠겠는가. 제대로 된 시스템으로 돌아갔을 리가 없다. 그 해에 신용운은 늘 그랬듯이 불펜으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문제는 그가 아니라 다른 투수들이었다. 팀의 주축이 되었어야 할 김진우와 전병두가 부상악령에 시달렸다. 구원승만으로 다승선두로 치고 올라올 정도로 신용운의 페이스는 좋았지만 불펜요원 한명이 팀을 이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되는 집은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속속들이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광주일고 출신의 최희섭이 MLB 생활을 접고 국내복귀를 타진했다. 이에 최희섭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당시 외인 타자로 저조한 성적을 보이던 래리 서튼을 내보내야 했다. 그리고 정재공 단장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했던 펠릭스 로드리게스를 대체 선수로 데려온다. 지금이야 로사리오나 제임스 로니, 헥터 노에시같은 선수도 KBO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2007년에 F-Rod는 충격적인 영입이었다.
나비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커리어 내내 릴리버로만 뛰었던 로드리게스가 선발투수로 뛰기를 거부한 것이다. 당시 기아 선발진은 선발전업 첫해부터 에이스급 성적을 내고 있던 윤석민을 제외하면 절망적인 수준이었다. 아마도 대단한 커리어를 가진 로드리게스가 선발 로테이션 한 축을 지켜주길 바랐겠지만 이게 어그러져 버린 것이다. 어떡하겠는가. 윗돌 빼서 아랫돌이라도 괴어 넣어야지. 감독 재임 기간동안 수많은 선수들의 팔꿈치를 갈아 넣은 혹사의 아이콘 서정환 감독은 신용운을 선발 로테이션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는 최악의 선택이 된다.
신용운은 선발 로테이션에서 9경기를 소화했으나 단 1승만을 거뒀으며, 그 기간의 ERA는 5점대 중반을 훌쩍 넘는 그야말로 최악의 피칭을 선보였다. 2002년 이후로 쭉 릴리버 생활만 했던 선수에게는 말도 안되는 요구였다. 당연히 신용운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전임 김성한 감독부터 시작된 끝없는 혹사에도 굳건했던 무쇠팔은 차츰 꺾여 갔다.
타이거즈가 12년만에 V10을 달성했던 순간을 신용운은 함께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팔꿈치가 으스러질 때까지 자신의 몸을 비틀어 대며 공을 던진 그였지만 정작 환희의 순간에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공간에서 쓸쓸히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암흑기는 괜히 온 것이 아녔다. 팀의 10년을 책임질 투수를 당장의 성적을 위해 아낌없이 갈아 넣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불과 2007년에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2년만에 우승을 차지한게 신통할 지경이다. 우승이 당연했던 팬들은 부진한 시기를 타이거즈의 영건들을 보며 견뎌 냈다. 이들이 기대만큼 커 주면 다시금 이전처럼 영광을 맛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런 기대를 받던 투수들치고 순탄하게 커서 타이거즈의 기둥이 된 선수가 거의 없다. 한기주, 이범석, 곽정철, 신용운… 하나같이 우리의 아픈 손가락이다.
죽은 사람 빼고 다 살릴 수 있다는 삼성라이온즈의 STC를 거쳐 신용운이 부활의 날개짓을 폈을 때 얼마나 많은 타이거즈 팬들이 기뻐했는지 모른다. 못난 구단을 만나서 미안하다고. 늦게라도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그는 새로운 팀에서 우승반지도 껴보고, 이전과는 달리 1이닝씩만 던지고 내려오는 당연한 관리를 받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부상의 악령이 잊을만하면 찾아왔지만.
어느덧 그도 36세의 노장이다. 거듭된 수술과 재활에 지쳐 은퇴수순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아픈 손가락이라는 말을 요즘 많이들 하지 않는가. 신용운은 타이거즈 팬들의 아픈 손가락이다. 구단과 감독들의 조급증이 선수 한명의 커리어를 망쳤기에, 너무나도 아픈 손가락이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이 2000년대의 타이거즈에는 한둘이 아니다.
바라건대는 타이거즈 구단이 그에게 은퇴식을 선물해 주었으면 한다. 양심없는 생각인걸 안다. 내가 선수 본인이라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죄값을 치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시늉이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 ‘무쇠팔’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별명을 붙여가며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그 시절에 대한 반성이 우리에겐 절실하기에. 뼈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기에 금강불괴라는 말은 있을 수 없기에.
고마워요. 미안해요. 덕분에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