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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Jun 18. 2024

맨정신으로 글을 쓰기 힘든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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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왜 글을 쓰지 않냐는 질문을 받았다. 며칠 사이에 반복된 물음이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함께 한 아주 오래된 친구가 한 번,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주는 친구와의 만남에서 또 한 번.


그래, 글을 참 많이도 썼지. 기자가 되기 위해서? 그것도 있었겠지만. 더 똑똑하고, 지적으로 풍성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썼다. 읽고 쓰는데만 온 힘을 쏟은 시간들도 있었다. 바라던 직업을 얻고는 못 그랬다. 솔직히 너무 바빴다. 하루에 서너시간도 제대로 못 자는데 무슨 글은 글이아. 어느정도 여유를 찾고 나서도, 제대로 못 썼다. 어느새 나를 위한 글을 쓰는 근육은 퇴화한듯 했다. 그런 와중에도 한 토막씩의 글은 남기려고 했었다. 2년 전에 만든 이 계정도 그런 이유에서였고, 의무감에라도 가끔씩은 무언갈 썼다. 근데 그것조차 계속할 힘이 떨어졌는지 한동안 소식을 들려주질 못한거다. 왜일까.


햇볕이 날카롭게 내리쬐던 일요일, 여의도에 갔다. 나와는 이제 상관없는 곳인지라. 캡모자에 반팔, 반바지, 운동화를 신고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으러 나갔다. 즐거운 점심이였지만 대화 주제는 썩 가볍지만은 않았다. 형편없이 망가지고 애처로이 흔들리는 민주주의를 얘기했다. 그 퇴조에 앞장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은 한숨으로 풀어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하늘을 봤다. 쪽빛이 안 부럽게 새파란 날이었다.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길은 그에 잘 어울리는, 푸르른 잔디로 채워져있었다. 여름을 맞아 꽃은 또 얼마나 만발했던지. 그런데 이 아름다운 초여름 낮을 사진으로 담아내려는데. 서늘한 기운이 다가왔다. 꽃내음은 알싸했다. 이싱한 기시감이 들었다. 뭐랄까..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았다. 나는 이 공간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없는걸.



어제 봤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스멀스멀 겹쳐보였다. 무서운 영화였다. 걱정한 것보다는 덜 무섭다고 생각하며 내심 안도했는데, 지금까지 곱씹게되는걸 보니 아주 무서운 영화다. 2차대전의 절멸수용소에서는 600만명 넘는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가스실에서, 소각장에서 죽어나간 사람들이 수백만 명이었단 얘기다. 80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면 정말...초현실적인 숫자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가족은 그들만의 낙원을 구축했다. 오직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매일같이 제노사이드의 악취와 비명이 들리는 공간 바로 옆에. 그런데 그들은 멀쩡하게 잘만 살아간다. 아름다운 꽃밭을, 풍성한 채소밭을 가꾼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못할 일이다. 조금이라도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수용소장의 장모처럼 그 지옥도를 반나절 만에 감지하고선 질려서 도망을 가겠지.


그런데 말이지, 오늘의 나도 도망을 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배차간격이 1시간인 버스를 놓치지 않으러 서두르는 건줄 알았는데. 사실은 속이 영 불편했다. 전임 국회 사무총장 시절 풍성하게 가꿔진 국회의 그 화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난 2년간 거의 매일 출근도장을 찍었던 곳이었다.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 300명이 모였는데, 숭고하기보다는 추악한 쪽에 가까운 역사를 기록할 일이 훨씬 많았다. 그 가운데서 종종 슬펐다. 아주 많이. 홍수 속 반지하에 갇힌 죽음을 들었을 때, 이태원 한복판에서 159명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물이 범람한 지하차도에서 참사가 났을 때, 인명수색을 위해 차출된 해병이 사망했을 때. 절대 나아지지 않는 세상을 볼 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그들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세요'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보세요'라고 했다. 그게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참극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여기에라고 적용되지 않겠는가. 사람을 지우고 욕망만 남은 공간이란 공통점이 있으니, 아주 잘 들어맞을거다. 스크린 속의 잔디밭과 내가 오늘 본 잔디밭의 초록은 놀랄 만큼 채도가 비슷하던걸. 아, 이만하면 내가 왜 글을 쓰지 못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될 것 같다. 한때는 정치철학의 현상화를 꿈꾸던 사람이 감히 맨정신으로 글을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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