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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Dec 04. 2015

노이로제 일반론으로 분석한 <나를 찾아줘>

알파걸 에이미를 파헤친다

※ 본 포스팅은 2014년 10월에 작성된 글입니다.


<나를 찾아줘>(원제: Gone Girl)는 <세븐>, <파이트 클럽>, <조디악> 등으로 유명한 헐리우드의 스타 감독 데이빗 핀쳐 감독의 최신작이다. 광고감독 출신으로 영화계에 기린아처럼 등장한 데이빗 핀처는 영상 연출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 묘사에도 탁월한 재간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본 영화는 그의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정점에 달한 작품일 것이라 생각한다. 해당 리포트를 통해 <나를 찾아줘>의 히로인, ‘에이미’의 심리를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트로마에의 고착, 무의식


에이미는 강박신경증 (obsessional neurosis)히스테리(hysteria)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트로마와 고착이라는 두가지 중요한 원인변수가 위치한다. 에이미는 분명 고착되어 있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이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 리비도는 과연 무엇일까.


작중에서 묘사되는 <어메이징 에이미>는 세대를 초월하는 인기를 구가하는 이야기 시리즈물이다. 그리고 에이미는 이 시리즈의 실제 모델이다. 에이미는 전세계 여자 아이들의 워너비 모델이다. 어쩌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를 보고 성인이 된 여성들에게도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에이미는 에이미가 아니다.사람들은 에이미를 부러워 마지 않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에이미는 소설 속의 완벽한 알파걸 에이미다. 실제로 에이미는 소설속의 자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는 일종의 트로마이다. 하나의 사건은 아니지만 지속된 스트레스가 강박관념과 트로마를 심어준 것이다. 이는 <어메이징 에이미> 시리즈의 기념행사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감당하지 못하는 에이미의 표정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녀는 백마탄 왕자라 생각했던 닉 던에게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는다. 닉 던은, 적어도 그 시점에선 백마탄 왕자가 맞았다. 그는 에이미의 문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청혼을 한다. 아마도 에이미는 닉에게서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어느정도 놓아놓고 편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는 분명 에이미에 고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메이징 에이미>는 그녀의 삶 자체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알파걸’ 에이미로 행동해야 한다는 자각은 에이미의 리비도로 기능했다. 때문에 에이미는 그녀의 리비도를 지키기 위해 페르소나를 한꺼풀 뒤집어 쓰고 그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닉 던은 그녀의 리비도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킴으로써 강박을 피하게 하기엔 역부족인 인물이었다. 에이미는 자신의 외부적 이미지를 전환(transfer)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채로 너무나 오랜 시간을 견뎌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박은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딱딱하게 얼어붙어서 굳은 초콜릿이 작은 충격에도 쉽사리 깨지듯이, 에이미는 어떻게 보면 취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닉 던의 불륜이라는 사건은 그 모든 것을 깨 버렸다.


에이미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유로워졌다. 어메이징 에이미의 주인공인 엄친딸이자 알파걸 에이미는 다른 사람들이 바라고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에이미는 그 페르소나에 충실했고, 리비도를 얻었으며 그곳에 고착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면을 바꾸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 닉 던의 불륜은 단순한 불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에이미는 자신을 특별한 여성으로 여겼다. 그리고 특별한 여성으로 대우받기 위해 하나의 인격체를 창조해서 그것을 연기했다. 그러나 닉 던은 에이미보다 한참 어린, 심지어 학생인, ‘앤디’를 유혹하는 과정에서 에이미에게 했던 것과 똑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설탕 공장에서 눈처럼 흩날리는 설탕을 배경으로 한 키스. 이는 에이미가 본인이 특별하다고 여길 수 있게 한 이벤트였고,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이벤트였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도 똑 같은 짓을 적용한 이상 이는 더 이상 에이미 본인에게만 적용되는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에이미는 고착에서 풀려난다.






저항과 억압


본 영화에서 에이미라는 캐릭터는 얼핏 보기에는 저항이라는 과정이 없던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에이미는 본인의 모든 것을 컨트롤할 수 있으며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의식화하는데 거리낌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미가 시시각각 다른 페르소나를 가동할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을 지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저항과 억압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항과 억압의 균형에 관한 이 과정은 에이미가 자신을 지우는 사건 전과 후로 나뉘어서 생각될 수 있다.


1)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페르소나(어메이징 에이미)를 쓰고 닉 던의 평범한 아내로 살아가던 에이미: 자신이 가장 즐겁게 살 수 있는 무의식적 욕망 (패스트푸드, 소다)에 의식적으로 저항하였다. 그녀는 유명 소설 프랜차이즈의 모델에 걸맞는 행동을 해왔고 성실한 아내 역할을 하였다. 억압의 기제는 에이미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였다. 이 지점까지는 억압이 저항과 균형을 이룬다. 억압의 정도가 저항의 정도보다 더 커서 현상유지를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닉 던의 방탕으로 인해 억압이라는 기제는 지속할 이유를 상실한다.


2) 기존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자아를 찾기로 결정한 에이미

: 에이미의 저항과 억압의 균형이 무너진 계기는 바로 닉 던의 불륜이었다. 그의 불륜으로 인해 에이미는 자신이 고수하던 페르소나를 더 이상 쓰고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닉 던은 정상적인 결혼생활에 종언을 고하는 우를 범했고, 이를 통해 에이미 자신이 중요시 여기던 가치는 파괴되었다. 여기서 저항은 억압을 아득히 초월하게 되고 에이미는 아예 새로운 페르소나를 들고 나와 자살연출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발달과 퇴행의 관점들, 병인론


분명 에이미는 닉 던을 버렸다. 에이미는 자신만을 위해 오롯이 특별해질 수 있는 존재를 갈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20대 초반의 젊고 생그러운 제자에게도 자신에게 했던 로맨스를 그대로 반복하는 닉 던은 더 이상 에이미의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닉 던은 반전을 이뤄낸다. 그 계기는 전국으로 방송된 토크쇼였다. 닉은 그 방송에서 자신이 불륜이라는 얼마나 멍청한 짓을 범했는지, 그리고 아직도 얼마나 에이미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자신을 헌신할 것임을 강력히 드러냈다. 데지 콜린스의 집에서 이 방송을 보던 에이미는 이걸 보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다. 그녀는 다시금 ‘the special one’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게다가 에이미는 닉이 이 모든 상황이 에이미 본인의 연출 하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 닉은 에이미와 맞불을 놓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그녀를 찾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헌신적인 남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서 나온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었든 간에 말이다.


에이미에게 과거의 강렬했던 체험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설탕키스와, <어메이징 에이미>의 기념식에서 기자들을 앞에두고 자신에게 청했던 달콤한 프로포즈와 같은 것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에이미 한사람을 타겟으로 하는, 전적으로 그녀만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에이미에게서 ‘리비도의 점착성(viscosity)’을 관찰할 수 있다. 에이미가 오랜 기간동안 고집해왔던 리비도와 페르소나는 <어메이징 에이미>였다. 그리고 어메이징 에이미는 닉 던이라는 (굳이 닉 던일 필요는 없지만) 남자의 헌신에 의해 완성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데지 콜린스는 닉 던이 될 수 없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데지는 에이미를 자신의 방식으로 바꿔 놓고자 했다. 살이 찌고 모습이 피폐해진 에이미에게 어서 꾸미고 예뻐지라는 종용을 했던 데지를 에이미는 곱게 생각하지 않았다. 에이미는 고유의 페르소나와 리비도가 매우 강한 캐릭터이다. 나르시즘 역시 관찰할 수 있다. 아니 나르시즘이 매우 높은 캐릭터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닉 던은 자신을 사형 직전까지 몰아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를 다시금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자신을 버린 닉 던에게 에이미의 리비도는 자석의 N극이 북극을 향해 핑그르르 돌듯이 다시금 끌려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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