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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Dec 05. 2015

이전과는 같을 수 없음에

프로스트와 게바라를 생각하며



...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먼 훗날, 나는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말하게 되리라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다른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노라고,

그리고 그것이 그 모든 차이를 만들었노라고.


-Robert Frost, <The Road Not Taken>.



마지막 구절이 특히나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사랑받는 시다. 그런데 어느날 그 마지막 구절의 의미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다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시 전문의 해석이 궁금해서 서핑을 하던 차였다. 한 블로거가 자신은 시를 전공하는 학생인데 , 이 시의 해석에 오역이 있고 그것이 general한 일반적 해석으로 굳어진게 안타깝다며 댓글을 달았다.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기 때문'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름'을 만든 것은 두 길중에 한 길을 택했기 때문- 다시 말해 다른 길을 택했어도 인생은 달라져서 어떤 길을 택하든 인생은 전부 달라진다- 그래서 두 길중 한쪽 길밖에 선택 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나로선 다소 충격적인 해석이었기에, 영문학에 조예가 깊은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하였다. 궁금증과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갔는데, 오히려 걱정이 늘어왔다.


"언젠가 쉬게 될 한숨은 그때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 이와 같은 인생에서의 선택이라는것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들은 이를 판단,평가하고 정당화,합리화를 통해 해석하려드는 무지한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쉬는 한숨"



"선택의 본질인 불확실성과 그에 대처하는 사람의 자세를 보여주는 시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sigh'는 결코 어느한쪽으로 치우친 단어가 아니지 않은가. 후회의 한숨이 될 수도 있고, 안도의 한숨이 될 수도 있다. 'difference'도 마찬가지다. 좋은 변화일수도 있고 나쁜 변화일 수도 있다. 여기서 이 단어들이 중립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마지막 연에서만 바뀐 시점인데, 미래에 말하는 투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립적인 점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더욱 명확히 드러내주는 것이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이고 온 격이었다.


결국 해석의 다양성에 대해 보다 직관적인 이해를 할 수는 있었지만.







작가의 손을 떠난 문학 -시도 물론 포함된다- 의 내용은 독자가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들 한다. 그렇지만 여태껏 생각했던 해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음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정답이라는 것이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단 것을 깨닫자 기분이 이상했다. 참으로 신기한게, '기존에 그렇게 생각하던 것이 실은 이렇다.' 라는걸 알게 되면 그전의 느낌이 살아나지 않는다. 결코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피부로 실감한다.


예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체 게바라의 명언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


그러나 한참 후에 읽은 체 게바라 평전에는, 저 구절을 실제로 그가 말했다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는 결론이 담겨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후로는 분명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격언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예전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더 나아가서, 사소하게 넘길 수도 있지만, 이런 느낌이 게바라나 프로스트라는 '상징적 아이콘'에 내가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결국 나 역시 무비판적으로 살면서 그저  '있어보임'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연연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고 말이다.






때로는, 모르는게 정말 약일수도 있겠다.

알고 있지 않았다면 좀더 편했을거같은 이러한 사실들이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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