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시대의 할복

by PolyMental

피의 역사를 마감하는 에도막부시대 초기에, 다이묘들의 절대적인 복종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이전까지 쇼군들의 영향력 내에 놓여 있던 골수 사무라이들은 하나 둘씩 제거되기 시작했습니다. 각 지역에 군소로 있던 수많은 도류의 통합도 병행 되고 있었는데, 시체 썪는 냄새와 핏물이 흐르는 들판을 보고 살아왔던 사람들을 다루기 위해서는 지배세력의 더욱 강력한 대중기만술이 필요했었죠.


그래서 등장한 것이 가마쿠라막부와 무로마치막부의 잔존 세력들의 와해와 흡수를 위한 할복 대회였습니다.

정확히는 대회의 성격이 있다기 보단, 가문의 존폐를 쥐고 있는 제 1인자가 대중의 앞에서 공개적인 할복을 통해 가족과 가신들을 새시대에 안전하게 편입 시키려는 빅딜인 셈이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면 당연히 모든 사람들이 몰살 당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몇몇 쇼군과 그 가신들에 대해선 무참한 도륙의 형벌이 가해졌죠.


이렇게 해서 전국 시대에서 조차 없었던 백주 대낮의 연이은 단체 할복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한 개인으로서뿐만이 아니라 그가 대표하는 세력의 운명을 결정 짓는 것이었으므로, 누가 더 웅대한 뜻과 기개를 펼치며 자결하는가가 관건이 되었고, 자연스레 대회의 성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네덜란드인들이 다수 일본에 와 있었는데, 당연히 이 잔혹한 진풍경이 파란눈의 외국인들에게 엄청나게 보였을 터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이 희대의 할복 경연대회에 관한 문서의 대부분은 그리하여 네덜란드 왕립도서관 지하2층 일본 자료실에 있다가 1968년 공개 된 것들로서, 일반에게 공개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자들에게만 공개되는 것들입니다. 각종 도해와 설명으로 이루어진 200여페이지 분량의 '반룽스겐 아시아여행기'에 따르면, 당시의 끔찍한 대회를 통해 결국 1,2,3위가 가려졌다고 합니다.



3위는 구게정권의 끝물에 합류했다가 훗날 막부정권으로 적을 옮겼던 요시무라 나시모토로 알려진 인물(한자로 쓰여진 인명이 아니라서 결국 학자들에 의해 추적되어 동일인물임을 확인한.)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칼로 자신의 배 한가운데를 찔러 넣은 뒤, 척추를 축으로 몸통둘레를 한바퀴 돌렸다고 전해집니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검술이 아니면 사람의 척추를 끊어 놓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목격담이 사실이라면 그의 검기는 거의 최고 경지에 다다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위는 무로마치 막부를 세우고 전사하므로써 자신의 가문에 영원할 것 같은 녹을 내려받게 했던 쇼고 아이시마의 실질적 후계자, 노리야마 아이시마였습니다. 그는 두개의 칼로 자신의 배 한가운데를 사각형으로 찔러 벤 뒤에, 배 한가운데를 손으로 툭툭 쳐서 살덩어리를 빼냈다고 합니다. 이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보는 동안 사방에 피비린내가 진동 하였는데, 결국 그의 가족들과 그가 거느리던 무사들은 목숨을 보장 받을 수 있었습니다.





1위는, 에도막부 초기부터 제거대상 일순위의 무사집단이였던 미야자끼 일도류의 수장 미야자끼 도오이치였습니다. 그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검류를 지키기 위해 에도 한복판의 돌바닥에 무릎을 꿇는 치욕적인 자세로 죽었습니다. 그가 한 할복은, 두 다리 사이에 칼을 위치하여 왼손을 앞으로 뻗어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을 뒤로 뻗어 칼끝을 잡은 뒤, 칼날을 가랑이로 향한 채 순식간에 위로 끌어 올린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몸을 두개로 분리한 뒤 자신의 양쪽 귀를 잡아 당겨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곧, 혼란기의 종지부를 찍는 에도막부정권을 향해, 도저히 한 몸일 수 없는 두개의 존재를 왼손으로 잡은 칼자루와 오른손으로 잡은 칼끝을 대비하여 명시적으로 표현 한 것으로서, 비록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그 고통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기개에 놀란 여러 사람들에 의해 1위로 뽑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휘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함께 존경을 받아, 일본의 근대화를 이끄는 에도막부 막바지의 인재들을 양성하는 사람들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제 혼란의 시대는 몇백년을 지나고, 지금의 에도는 피의 역사를 머금은 벚꽃잎들만이 처연하게 날리우는 가운데, 과거의 참혹한 장면을 기억하는 에도성만이 핏빛 진홍을 띈 석양의 하늘을 등에 지고 어둠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잔인한 뻥을 왜 친 건지 나도 모르겠다. 만우절도 아닌데. - 20050112

작가의 이전글자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