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사람이 살다보면 별로 이해가 가질 않는 풍습에 직면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마련인데, 내 경우엔 만우절이 그렇다.
중고등학생 시절엔 반 친구들이 선생님의 물컵에 미리 소주를 넣는다던지, 모든 학생들이 칠판에 등을 돌리고 앉는다던지 하는, 상대가 아닌 자신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짓'을 해대며 박수를 치고 웃곤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뭣하러 이러나들' 싶은 생각만 들 뿐이다.
대체, 말 그대로 바보스러운 이 날(April Fool's Day)을 왜 기념하고 있는 것인지, 참말로 옛 사람들은 삶이 고단하고 경직 되어 있어서 이런 날을 필요로 했던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원래 만우절의 원형은 약 1200여년전 지금의 인도와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광범위한 밀교 종파로 이름을 날렸던 '투르타칸나(Turttah Khanna)'의 신년행사였다. 인도 대승불교의 위력이 쇠하던 7세기경에 창궐한 진언불교의 한 유파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토착신앙과 결부한 것이 투르타칸나였는데, 이 교파는 13세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원(元)나라의 쿠빌라이칸이 남송원정을 추진하면서부터 소멸했다. 투르타칸나의 교리는 인도식 과학적 세계관과 지역 무속신앙의 공포종교를 기반으로 한 것이어서, 그 철저함과 엄격하기로만 따지자면 코란에 버금가기로 유명했다.(단지 사원을 향해 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태형에 처해지기까지 했으니...!)
당시는 제정일치의 지역권력이 난립했던 시기라 강제적 규율로 인한 높은 사회적 스트레스를 지닐 수 밖에 없었고, 집권세력은 이를 해소 해 주기 위해 매 절기마다 일종의 축제를 열어 민심을 수습하곤 했다. 이 중 신년을 맞아 집단적으로 벌이던 종교행사가 규모면에서 가장 컸고, 이것이 유럽으로 전해져 지금의 서양식 만우절의 뿌리가 되었다.
3일 밤낮을 이어가는 이 행사에서는 그 3일간의 체력을 지탱하기 위해 약초를 이용한 약물을 복용했는데, 강력한 약물효과로 인한 격렬한 충동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있었다. 더구나 이 행사에 쓰였던 여러 약용추출물들이 스테로이드계의 성분을 띄고 있어서 몇몇 질병이나 통증에 대해 비교적 큰 효과를 볼 수가 있었기 때문에, 투르타칸나의 신년행사는 인근지역의 주민들이 모두 모이는 대규모의 큰 행사로 점차 발전했다.
현대의학에서 스테로이드를 추출 해내는 부신피질의 홀몬을 '코르티손(Cortison)'이라고 하는데, 이 코르티손의 어원이 바로 신년 행사에 쓰였던 '카르티쉬앙카(Kharuti Shiankka)'라는 약초이름인 것이다.
문헌상에서 13세기에 그 자취를 감추기 전까지 투르타칸나와 그들의 신년행사는, 11세기에서부터 13세기에 이르렀던 유럽의 몇차례 십자군 원정에 의해 서구에 차츰 알려지고 있었다. 그들의 광기어린 행사가 종내에는 수많은 이들의 집단성교에까지 이르는 것을 묘사한 글과 그림을 두고 악마의 의식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그들이 섭취하는 약물의 원료와 추출방법이 동시에 전해지게 되면서, 따분하기 그지 없었던 당시의 프랑스 귀족과 군인들의 상류층 비밀집회를 통해 그 이국적인 종교행사는 다시금 재현되게 되었다. 은밀한 행사를 포함한 그들만의 집회는 수세기간 잘 보존 되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경 프랑스의 루이14세(1643~1715)에 이르러 귀족들의 특권을 해체시키는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자, 비밀집회가 왕권에 도전하는 귀족들의 비밀결사로 변질되면서 유럽 역사의 수면 위에 떠오르게 된 것이다.
태양왕으로 불리는 루이14세는 유년시절에 정치적인 고난을 겪은 탓에 집권기간 내내 귀족들을 매우 불신했었다. 그런 까닭에 왕권의 강화를 위한 그의 행보는 매우 강력하여서 귀족들의 친목을 빙자한 이 모임도 만천하에 공개되어 처벌 대상이 되었으나, 다소 주술적이었던 행사는 [유일한 왕 유일한 법 유일한 종교]를 내세운 그의 강력한 통제 하에 주류종교계로 흡수되었다. 대내외적으로 민심 이반을 막기 위해 노력하던 부르봉 왕조에서 이 행사가 가지는 통치적 순기능을 지나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 '늑대의 후예들(2001)'을 보면 루이15세에까지 이르는 비밀조직의 해체과정과 사회변혁이 잘 나온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투르타칸나의 행사가 그랬던 것 처럼, 이 신년행사는 몇백년만에 다시 민심 수습에 이용됐다. 또한 기후가 맞지 않아 카르티쉬앙카를 재배 할 수 없었기에 동양에서 건너오던 그 값 비싸고 희귀한 약초를 민간에서 부담할 수 없게 되자, 더이상 약물복용에 의한 집단 최면의 광기 따위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근친상간과 엽기로 얼룩진 퇴폐적이고 기괴했던 귀족들의 비밀집회 양상은 사라지고, 단지 처음의 투르타칸나 종교행사와 귀족들의 집회에서 그러했듯이 '금기시 되는 것들을 깨는 짜릿한 쾌락'의 의미만 가지게 되었다.
그 후 루이16세의 처형과 귀족들의 부패한 정치로 인해 혼란을 거듭하던 프랑스에서는 그들 상류층의 기득권과 이전투구를 통렬하게 비웃는 유머가 유행하면서 -앙트와네트의 그 유명한 '그럼 빵 대신 케익을 먹으면 되잖아요' 이야기처럼.- 그들의 권력과 행태를 비웃는 '금기시된 조롱'의 기회를 이 날만은 공개적으로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조롱의 의미는 더욱 견고해져서 결국 행사의 날짜까지도 옮겨버리게 되었다.
4월 1일은 그레고리력 이전의 프랑스식 새해행사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지만, 왕비 앙트와네트가 성난 군중을 피해 도망칠 때 옷을 바꿔입었던 시녀의 생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것이다.
이런 쓰잘데기없는 거짓말을 대체 뭣하러 지어내느냔 말이다, 밤 새가면서.
속았다면 미안하지만.
만우절 시리즈 - 200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