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리장수로 변신한 우리 집 요리사
요즘따라 가끔 눈이 침침하다. 핸드폰이나 노트북 같은 디지털 화면을 오래 보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모니터로 책이나 자료를 읽게 되면서 초점을 오랫동안 고정시키니 더 눈이 건조해지고 피곤해지는 것 같다. 눈에 좋다는 블루베리는 맛도 좋아서 가끔 요거트에 곁들여먹는 데, 뭔가 또렷해지는 느낌이 든다. 베리류의 과일들은 냉동으로 접하기는 쉽지만 생으로 먹으려면 가격이 만만치 않다. 오늘은 블루베리, 딸기보다 더 모시기 어려운 산딸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어릴 적, 집에는 김치 담글 때 쓰는 크기의 큰 스텐 다라이에 종종 산딸기가 산만큼 쌓여 있었다. 하교 후 집에 도착하여 산딸기를 보면, 한 손 가득 담아서 왕~ 하고 입에 넣어 먹고는 했다. 그러면 빨간 물이 손에도 묻고 입 주변에도 묻었는 데, 알알이 터지는 산딸기의 식감과 과즙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함과 특유의 향긋함이 기억난다. 얼마큼 먹으라는 제한이 없었기에 배가 만족할 때까지 오독오독 산딸기를 씹어먹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산딸기가 있는 곳에 뱀이 많다고 들어서 구하기 어렵고 무서웠겠다'였다. 그러나 지금 그런 산딸기를 본다면 '너무 비싸겠는 걸?" 하고 사악한 가격이 먼저 생각날 것이다.
얼마 전에 엄마와 대화하며, '은색 다라이에 담긴 산딸기, 맘껏 먹었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엄마에게 비밀을 하나 전해 들었다. 바로, 그 산딸기를 할머니께서 공수해 오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가방이 있다. 할머니는 그것을 '니꾸사꾸'라고 하셨는 데, 백팩을 의미한다. 할머니는 검은색 니꾸사꾸를 주로 메고 다니셨는 데, 장을 봐오실 때는 그 가방이 가득 차있곤 했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먹던 그 산딸기는 할머니께서 산딸기가 나오는 철에 시골에 내려가셔서 원산지에서 직접 사 오신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무궁화호를 타고 시골에 다녀오시는 할머니의 빵빵한 보따리 가방에 숨겨진 것이 산딸기였다니, 나는 적잖이 놀랐다.
몰랐었다. 주변 시장에서 사신 줄로만 알았지 그 먼 지방에서 올라온 산딸기였다니! 그것도 할머니의 백팩 속에서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견디면서, 무르거나 시든 것 하나 없이 싱싱하게 배송되려면 할머니께서 어떻게 들고 오셨을지가 상상이 되었다. '할머니 어깨 아프셨을 텐데...'. 순간, 눈이 침침한 것이 아니라 촉촉해졌다. 오일장 같은 곳에서 산딸기를 조금 맛보시고는 맛이 좋으니, 올라가서 먹이려고 기차 타기 전에 가득 가방에 담으셨겠구나 하고 금세 추측이 됐다. 감사하게 먹겠다고 내가 인사를, 표현을 할머니께 제대로 했었나? 괜스레 기억을 더듬어봤다. 이 구역 요리사는 손 맛도 최고지만, 그녀의 재료 공수실력은 홍길동을 뛰어넘는다. 할머니가 등에 매고 다니시던 그 귀여운 볼록한 가방에 뭐가 담겨 있었는지,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