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식혜보다 더 달았던 그 맛
어릴 시절 살던 동네를 생각해 보면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던 목욕탕이 생각난다. 엄마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가는 일은 주말 행사였는 데, 바깥은 고요한 아침인데도 안으로 들어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목욕탕을 가는 일은 내게 상반된 경험을 안겨 주었다. 먼저, 괴로움이다. 목욕탕을 가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고,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가며 작은 수영장을 경험하는 일도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때밀이 수건을 드는 그 시간은 큰 괴로움이었다. 엄마는 내 몸을 박박 밀어주셨는 데, 지금도 생각하면 따가운 것을 참느라 애썼던 거 같다. 엄마가 좀 살살 밀어주셨으면 좋으련만, 시원하다? 는 명분 아래 정말 열심히 밀어주셨다. 물론 밀고 나면 시원하기는 했지만 엄마의 빠른 손놀림은 매콤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고 또 다른 괴로움은 뜨거운 탕 안에 들어가거나 사우나 방에 들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뜨거움이 몸에 잘 안 받는지 열을 받으면 얼굴이 금방 벌게지고 기운이 빠진다. 그래서 지금도 여름에 햇볕아래 많이 돌아다니면 체력이 급감한다. 그렇다고 추위를 안타는 것은 아니지만 열에 취약하다. 엄마는 뜨거움을 잘 견디시는 편이었는 데, 잠시 열탕에 들어가시거나 온도가 높은 사우나 방에 들어왔다 나가실 때, 나는 종종 따라다녔다. 열탕에 발을 넣는 것부터가 뜨거워서 발을 넣다 뺐다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고, 사우나는 따라 들어갔다가 나는 바로 나와버리고는 했다. 목욕탕이 주는 열에 호되게 당한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욕탕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바로 즐거운 경험이었던 음료수 때문이다.
몸을 다 씻고 밖에 나오면 카운터 옆에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가 있었다. 그 안에는 각종 음료수들이 들어있었는 데, 그때 내 최애 음료수는 피크닉 사과맛이었다. 빨간색 피크닉은 지금도 편의점에서 살 수 있어서 볼 때마다 매우 반갑다. 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양 볼을 식히기에는 맹물로는 모자라다.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피크닉을 사달라 하면 바로 사주셨는 데, 냉장고에서 갓 꺼낸 피크닉에 빨대를 꽂고 마시는 순간 차갑고도 달콤한 맛이 쑥~ 내려가면서 온몸이 찌릿하고 시원해졌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는 데, 마치 오랜 시간 뜨거운 사막을 횡단하느라 지치고 고된 여행객이 길가에서 얼음물을 만난 느낌이랄까. 이때, 마시는 피크닉 맛은 목욕탕에서의 모든 괴로움을 다 씻어내고도 남는 어린 나의 자양강장제였다. 쓰다 보니, 엄마가 씻겨주시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뭐라도 시원한 것을 드셨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나도 이제는 피크닉보다 더 좋은 것을 사드릴 수 있는 데, 그런 좋은 경험을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