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도둑, 게 섰거라!
오늘은 이 구역 요리사의 요리 중에 왕좌에 앉은 요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게장이다. 할머니의 게장은 맛이 정말 좋았고, 어린아이 때부터 맛있게 먹었던 요리다. 간장게장과 양념게장 둘 다 많이 만들어주셨는데, 비율로 따지자면 간장게장이 7, 양념게장이 3의 비율로 간장게장을 많이 만들어주셨다. 요즘 게장 먹으려면 1인분에 3-4만 원은 되기 때문에 쉬이 사 먹기가 어렵다. 돌이켜보니, 할머니 덕에 진귀한 요리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할머니의 게장은 먼저, 게 크기가 컸다. 잘 담근 게를 꺼내실 때, 게 안쪽의 배딱지를 보여주시면서 뾰족한 것은 수놈, 그 보다 둥근 모양이 암놈이라고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늘 큰 암게로 게장을 담그셨는데, 잘 익은 게장의 게딱지를 열면 그 안에 실한 게살과 진한 황금빛 내장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몸통을 4개로 혹은 6개로 잘라서 한 입에 먹기 좋게 다듬어 주셨다. 뜨거운 밥 한 숟가락을 크게 퍼서 그 위에 게살을 쭈욱~ 짜서 올려먹으면 밥 사이로 스르르 스며든 짭짜름한 게살의 풍미가 온갖 바다를 다 넣은 듯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비법이 담긴 장국물이 꽤나 맛있었기에 밥 위에 올린 게살 위로 살짝 뿌려먹는 것을 빼놓지 말아야 했다.
게장을 먹을 때, 또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게딱지이다. 모양도 밥그릇처럼 생겨서 누가 봐도 밥을 넣고 비벼먹게 생긴 그 부분이다. 게딱지는 밥을 넣기 전에 중요한 순서가 있는 데, 먼저 양쪽 끝에 숨어진 게살을 잘 발라내는 것이다. 젓가락으로 슥슥 빼내면 생각보다 많이 나오는 게살에 놀라게 된다. 게살을 다 모은 후, 그 위에 뜨거운 밥을 3-4 숟갈 정도 풍성하게 담아 슥슥 비빈 후, 참기름과 통깨를 취향대로 뿌려 먹으면, 여기서 이미 밥 한 그릇을 끝내게 된다.
그리고 놓칠 수 없는 부분이 게다리이다. 얇은 게다리들은 입으로 쪽쪽 빼먹으면 그만이지만 두꺼운 집게다리는 난이도가 매우 높다. 그냥 입 안에 넣고 먹다가는 날카로운 돌기에 찔려서 다칠 수 있고, 잘못 씹어 먹다가 이가 나갈 수 있다. 그래서 보통은 먹지 않고 버리게 된다. 이 구역 요리사께서는 그 부분을 망치 같은 도구로 톡톡 깨서 주셨다. 그렇게 부서진 껍질을 잘 떼어내면 탱탱한 게살만 남게 되었는 데, 그 부분은 더 쫀득한 식감을 가진, 또 다른 별미였다. 이렇게 재밌는 방법들로 게 살을 발라 먹다 보면 밥 두 그릇은 늘 기본이었다.
성인이 된 후, 게장은 어떻게 담그는지 궁금해서 엄마 옆에서 구경을 한 적이 있다. 먼저, 게를 깨끗하게 닦고 손질해야 한다고 하셔서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솔을 들고 게를 닦으려는 찰나에 놀라서 바로 포기했다. 게를 닦는 일은 생각보다 꽤나 무서운 일이었다. 요리를 다 끝낸 후, 잘 다듬어진 게살만 쏙쏙 빼먹은 나로서는 요리가 되기 전의 게를 만나는 것이 이런 것일지는 몰랐다. 게의 거친 털들과 눈코입(?)과 단단한 등껍질을 만지기에 나는 한참 부족했다. 다시 한번, 할머니의 노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에 음식을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잘 가라앉지 않고 계속 올라와서 늦은 밤 병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유는 갑각류 알레르기였다. 저녁으로 간장에 절인 생새우를 조금 맛보았는데,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었는지 몸에 이상반응이 생겼던 것이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어온 나였기에 알레르기가 생겼다는 말에 놀랐다. 갑각류 알레르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잘 생기기도 하는데, 먹지 말아야 할 음식에 '게장'이 들어간다. '게장'이라니... 내 어릴 적 최애 음식 '게장'을 먹지 못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서글퍼졌다. 익혀 먹으면 괜찮지만 생으로 먹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게장과 조금씩 소원해지게 되었다.
가끔 식당을 방문하면 반찬으로 작은 게장이 나올 때가 있다. 나는 게장을 완전히 잊을 수 없기에 조심하면서 조금씩 맛보고는 한다. 편하게 먹기에는 불편함이 있지만, 아직도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면서 먹는 재미가 있다. 이제는 사 먹기도, 만들어 먹기도 어려운 음식이기에 알레르기가 생기기 전에 많이 맛보게 해 주신 이 구역 최고 요리사에게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